벨기에 맥주전문점 업종개발에서 오픈까지 [ 1편 ]

시장은 변하고 고객은 새로운 것을 원한다. 시장과 고객의 변화에 대응해서 새로운 아이템이 출현하는 것은 시대정신의 한 단면이다. 최근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문을 연 벨기에 맥주전문점 벨고는 오픈과 동시에 주도업종이 없는 맥주 전문점 시장에 파란을 예고하고 있다. 업종개발 단계부터 오픈까지의 과정에 얽힌 숨은 이야기를 이 업종을 개발한 한국창업개발연구원(www.changuptoday.co.kr) 유재수 원장으로부터 들어본다.[편집자주]  

벤치마킹 여행을 떠나다

2007년 11월 21일, 인천공항을 출발한 아시아나항공편 항공기는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나리타 공항으로 내려 앉고 있었다. 창문 밖으로 점점이 박혀있는 유도등들이 영롱한 불빛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곧 착륙하겠다는 방송멘트와 함께 승객들의 움직임도 부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배낭여행 차림의 대학생들은 소풍을 떠나는 아이들처럼 즐거운 모습이었고, 해외 출장에 나선 회사원이나 외국으로 돈을 벌러 나선 사람들은 잠시 풀어놓았던 긴장을 다시 챙기려는 듯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자리를 정리하는 모습이 자못 진지해 보였다.

문득 창문에 비친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실소가 나왔다. 빡빡한 일정 속에서 간신히 2박 3일의 시간을 내어 나선 여행이 기껏 술집을 순례하면서 술을 마셔대는 벤치마킹 여행이라니. 행복에 겨운 일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아주 희한한 여행이라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일은 일이다. 여행목적은 벨기에 맥주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도쿄 시내 몇 곳에 있는 유명한 벨지안 비어 카페를 방문하는 것. 그곳에서 인테리어 컨셉을 조사하고, 메뉴를 분석하며, 여러 종류의 벨기에 맥주를 마셔보고 시음노트를 작성해야 한다.

도쿄에는 30여개의 벨기에 맥주 전문점이 성업중에 있었다. 그 가운데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은 점포는 긴자에 있는 안트워프 식스(Antwerp Six)와 도쿄역 근처에 있는 안트워프 센트럴(Antwerp Central), 신주쿠에 있는 프리고(Frigo) 등 3곳이었다.

안트워프 식스와 안트워프 센트럴은 호텔수준의 인테리어와 전통 벨기에 요리를 제공하는 일본의 대표적인 벨지안 비어 카페. 이 점포들은 1920년대풍 아르누브 스타일을 중심으로 하는 파사드 구성과 실내 인테리어로 품격과 격조있는 분위기 연출하고 있었다.

홈페이지를 통해 입수한 정보를 직접 만져보고 확인하는 것이 방문목적이었다. 필자와 우리 회사 직원 그리고 필자의 죽마고우이자 연합뉴스 일본 지사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이홍기 지사장이 자리를 같이 했다. 맥주를 좋아하는 이 지사장은 도쿄에 벨기에 맥주 전문점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필자가 추천한 트라피스트 맥주를 마셔 본 소감은 황홀하다고 했고, 벨기에 맥주 매니아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세 사람은 책이나 자료에서 보았던 여러 종류의 벨기에 맥주를 돌려 가면서 시음하느라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맥주를 마셔댔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의 즐거운 대화, 죽기 전에 꼭 마셔보아야겠다고 목록에 올려놓았던 벨기에 맥주와의 만남, 즐거운 저녁시간은 깊어만 갔다.

다음 날 저녁에는 신주쿠로 나섰다. 일본에 진출한 놀부 신주쿠 점에서 저녁식사를 한 다음, 프리고(Frigo)라는 작은 규모의 벨기에 맥주 전문점으로 향했다. 15평 규모 작은 점포였는데 찾기 힘든 장소의 지하에 있었다.

그러나 점포에 들어선 순간 작은 규모 점포는 경이로움 그 자체로 다가왔다. 작은 공간에 벨지안 비어 카페의 특색중의 하나인 둥근 등 장식이 아름다운 광채를 내고 있었고, 실내공간은 손님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옆자리 앉아 있던 여자 손님 일행은 벨기에의 유명한 트라피스트 맥주의 하나인 시메이 맥주를 두손으로 받쳐 들고 맥주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프리고 매장은 맥주 선술집이라고 할 만했다. 허름한 수준의 인테리어, 이것 저것 아무렇게나 갖다 붙여놓은 장식물이 묘한 조화를 이루며 인간의 냄새를 물신 내고 있었다. 이 날도 맥주 시음을 핑계로 많은 종류의 벨기에 맥주를 즐겼다. 언젠가 이 전설적인 벨기에 맥주를 국내에서도 마음껏 즐길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