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하여 3년 이렇게 버티기 [8편]

어음발행을 거래처에서 받은 어음이 정상적으로 떨어지고 여타 자금회전이 순조롭게 됐을 때만 안전하지, 어느 것 하나 구멍이 나는 날엔 그것으로 끝이었다. 가진 돈이 없는 고 사장으로서는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이었다.

그러나 우려가 현실로 다가왔다. 대구와 마산 지역에서 받았던 큰 거래처 어움이 부도가 난 것이다. 대금도 합쳐서 7억 6,000만원…. 도저히 이 금액을 메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범진산업을 다시 시작한 지 1년도 안 되어 부도가 크게 나고 말았다. 그때가 1995년 9월 30일이다. 부도 당시 부채현황은 이렇다.

금융권9억 7,500만원

매입처13억 2,600만원

인건비3,900만원

기타2,000만원

부도가 나니 범진산업이 받을 채권 약 8억 원 정도는 가압류로 흩어지기 시작했고 받기가 힘들어졌다.

ßè쫓기는 신세

빚에 시달려 보지 않은 사람은 그 고충을 모른다. 80kg이 넘는 몸이 70kg 이하로 내려갔다. 회사며 집이며 온통 가압류 딱지가 붙었고 거칠게 항의하는 피해자들은 시도 때도 없이 회사와 집으로 쳐들어왔다. 직원들은 퇴직금도 받지 못하고 뿔뿔히 흩어졌고 친동생 권유로 고영만 씨도 잠시 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며칠간의 피신은 오힐 정신적인 불안감만 가중시켰다. 그래서 차라리 모든 걸 다 밝히고 당당히 맞서기로 마음먹고 회사에 나갔다. 그러나 기다리고 있는건 성난 채권자들이었다. 그 중에 몇몇 사람은 악성채권을 전문적으로 받아내는 사람들이었다.

어깨가 떡 벌어지고 거친 언행을 일삼던 사나이들은 한 손으로 고영만 씨의 멱살을 번쩍 들어올렸다. 두 발이 들린 고영만씨는 눈앞이 캄캄하고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험한 꼴은 시작에 불고했다. 폭행과 욕설이 난무했다.

고영만 씨는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모든 것을 운명에 맡겼다. 잘못에 대한 대가를 받는다는 마음으로 모든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당하고 또 당했다.

ßè어머니의 죽음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는 가족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결국 어머니가 충격을 이기지 못해 쓰러지셨는데 어머니의 위와 간에는 암세포가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퍼저 있었다. 어머니는 그런 몸으로 아들을 돌봐주었고 가족들을 사랑하셨다. 어머니는 평소에 좋아하시던 찬송가 545장 󰡒하늘 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를 힘겹게 부르시고는 자리에 누워 하나님 품으로 가셨다.

그 모진 가난과 아버님의 박해 속에서도 어머니는 5남매를 키우시느라 자신을 돌볼 길이 없었던 것이다. 고영만 씨는 어머님께 다하지 못한 자식으로서의 불효로 인해 장사를 지내는 내내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