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3분의 1로 뚝… 찌개 1인분 시켜 두 명이 저녁 때워"

중개업소엔 '無권리금 점포' 매물 수두룩

서울 동대문 신평화시장. 이곳에서 12년째 식당을 하고 있는 유진상(52)씨가 녹색 보자기에 덮인 음식 쟁반을 들고 한 모자가게로 들어섰다. 보자기를 벗기자 은색 양철 쟁반에 1인분용 된장찌개 뚝배기는 하나인데 공깃밥이 두 개였다. 가게 주인이 4000원짜리 된장찌개를 1인분만 시키고 1000원짜리 공깃밥을 추가한 것이다.유씨는 "요즘 밥값 2000~3000원을 아끼려고 1인분을 시켜서 종업원과 둘이 먹고, 2인분 시켜서 셋이 먹는 사람이 많아 식당 장사가 안 된다"고 불평했다. 신평화시장 안에서 이달 들어서만 식당 3곳이 문을 닫았다고 한다.

유씨가 배달해온 된장찌개 1인분으로 종업원과 함께 식사를 한 모자가게 주인 이기영(60)씨. 그는 "석 달 전부터 1인분을 시켜서 두 명이 끼니를 때우고 있다"며 "남들은 '지독하다'고 욕할지 모르지만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짓"이라고 말했다.

이씨 가게에 하루 평균 30~40명씩 찾아오던 서울과 지방의 모자 소매상들이 최근에는 10명이 넘지 않는다. 매출이 작년의 3분의 1 이하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최근에는 가게와 창고 임차료, 종업원 월급, 공과금을 낼 돈도 맞추지 못한다고 한다. 이씨는 "경기가 좋아지겠지 하면서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데 예전에 모아 놓은 돈만 계속 까먹고 있다"고 말했다.세계적인 금융 불안에다 실물경제 침체 조짐까지 뚜렷해지면서 바닥 경기는 급속히 얼어붙고 있다.

서민들이 먹고, 마시고, 놀고, 입는 것을 줄이고 허리띠를 조이면서 시장과 주택가의 작은 점포들은 "죽을 맛"이라고 아우성이다.신평화시장의 이씨 모자가게에서 50m쯤 떨어진 스카프가게. 14년 전부터 스카프가게를 해왔다는 이모(여·45)씨 부부도 5000원짜리 백반 1인분에 공깃밥 하나를 추가해서 두 명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씨 부부는 최근 종업원 2명을 모두 내보냈다. 이곳에서 파는 스카프는 주로 중국에서 들여오는데 위안화 환율이 올라서 3~4개월 전 1800원에 들여오던 스카프 한 장의 단가가 지금은 2500원까지 뛰었다. 이씨는 "그것을 3000원 주고 팔고 나면 가게 임차료 낼 돈도 남기지 못한다"며 "종업원을 내보내고 남편과 하루 20시간씩 일하고 있지만 남는 게 없다"고 말했다.서울 성북구 안암동 학원가에서 만두와 떡볶이 등을 파는 한 분식집. 지난 30일 오후 5시 기자가 방문했을 때 주인 조상현(57)씨는 "당신이 오늘 네 번째 손님"이라고 했다.

낮 12시에 문을 열어 5시간 동안 판 것은 손님 세 사람에게 만두 세 판이 전부. 합쳐서 6000원어치라고 했다. 누적된 적자를 견디지 못해 가게를 처분하는 사람들도 속출하고 있다. 서울 성동구 금호동 금남시장에서 여성 옷가게를 운영하는 김모(여·71)씨는 30년째 운영해온 43㎡(13평)짜리 가게를 내놓았다. 권리금 없이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0만원 조건이었다. 하지만 석 달 동안 문의 전화가 한 통도 없었다고 한다. 30일 오후 8시 그는 가게 셔터문을 내리며 "원래 밤 10시에 문을 닫았는데 요즘 손님이 너무 없어서 전기세라도 아끼려고 일찍 문 닫는다"고 말했다.

상가 주변 부동산중개업소에는 점포 매물들이 쌓여가고 있었다. 31일 서울 성동구 행당동의 한 아파트 상가 입구의 공인중개사무소 외벽에는 '매매 학원' '매매 옷가게' '매매 병원'이라고 적힌 A4 용지 20여 장이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서울 강동구 둔촌시장 근처 한 중개업소 유리창에도 '무(無)권리금 점포 매물'에 호프집·노래방·수퍼마켓·학원 등 10여 개가 올라와 있었다.

고려대학교 주변 상권의 동대문구 제기동 B부동산 공인중개사 박병구(63)씨는 "근처 아파트 상가 1층의 한 횟집이 7000만원 권리금으로 매물이 나왔는데 워낙 팔리지 않으니 권리금이 1000만원까지 떨어져서 며칠 전 미장원으로 팔렸다"고 말했다.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의 조대연(31)주임은 "보통 한 달에 5~10개 정도의 수퍼마켓이 없어지고 새로 생기는 것이 정상인데 최근 한 달 사이에는 가입점포 중 100여 개가 폐업을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