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고 건강하고 평범한 삶이 행복”

사람은 욕심이 많다. 가진 사람은 더 많이 가지려 한다. 비교 대상도 그렇다. 나보다 못한 사람이 아니라 위를 쳐다본다. 김영일씨(60)는 올 4월부터 대일건설(주) 감사로 새롭게 일을 하고 있다.

육십이라는 적지 않는 나이에 재취업을 했다는 것도 대단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삶의 미덕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 역시 전 회사를 그만둘 때는 힘들었다. 후배들을 위해 ‘떠나야 할 사람은 떠나자’는 생각에 호탕하게 말을 뱉었지만 막상 회사를 나오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올 정도로 만감이 교차했다.

그렇지만 밑을 내려다봤다.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을 보며 “그래 나라고 하지 말라는 법 있어”라며 노사공동재취업센터의 문을 두드렸다.퇴직 전(前) 회사에서는 주로 어떤 일을 했습니까?“몇 군데 회사를 옮긴 적은 있지만 30년 줄곧 총무, 인사, 노사 등 관리 쪽을 맡았습니다. 마지막 회사의 직책이 관리이사, 임원이었습니다.

2006년 12월쯤 회사가 투자한 사업이 수익을 내지 못해 심각한 경영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 때 저를 비롯한 임원들이 일괄사표를 냈죠.”지금의 회사는 어떻게 들어간 것입니까?“평소 하지 않던 집안일도 도와주고, 집사람과 등산도 하면서 1년을 쉬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놀 나이가 아니잖아요. 지금 회사의 사장님과는 전 직장에서부터 안면이 있었습니다.

우연히 통화를 하다 '뭐하고 있느냐. 같이 일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의를 하더라고요.”

입사하기 전에 노동부 노사공동재취업센터에서 도움을 받았다고 하던데요.

“예. 이력서 쓰는 것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죠. 제가 쓰는 이력서는 너무 고전적이라서 지금과는 맞지 않더라고요. 또 자기소개서를 작성해서 보내면 사진 위치도 수정해주고, 제가 모르고 지나치는 사소한 것부터 자세히 가르쳐주더라고요.”

건설 쪽은 처음인데 입사하고 힘들지 않았습니까?

“4월에 입사했으니까 한 6개월 정도 된 것 같군요. 처음엔 건축법규, 건설용어도 생소하고 어렵더라고요. 여직원한테도 물어보기도 하고…. 생판 모르는 신입사원이나 진배없었죠. 지금은 많이 나아졌어요. 경리, 자금업무 외에도 현장의 복잡한 문제들, 즉 행정처리 등을 맡고 있습니다.”

건설업계가 힘들다고 난리입니다. 꽤 이름 있는 중견 건설회사가 무너졌다는 소식도 심심치 않게 흘러나오고 있는데요. 회사는 괜찮습니까?

“정말 남 일이 아닙니다. 단순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건설회사는 일거리가 없으면 큰일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수주를 받더라도 제값을 못 받고 ‘울며 겨자 먹기’로 할 경우가 많아요. 이윤이 남지 않다 보니까 자체 경비를 줄이기 위해 정말 피 말리는 고생을 합니다. 다들 그렇겠지만 어떤 때에는 입에서 단내가 날 때도 있습니다."

뭐니 해도 돈을 벌기 위해 회사를 다니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돈은 움켜잡으려고 하면 자꾸 도망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이가 들수록 돈보다 일을 할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것 같아요. 돈이라는 것이 사람을 웃기기도 하고, 울리기도 하지만 돈을 좇다 보면 자기를 잃을 수 있거든요.”

창업이라든지, 내 사업을 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습니까?“저는 사업기질이 아니라고 합디다(웃음). 젊었을 때 직장 선배하고 동업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만 유혹에 넘어간 것이죠. 결국 사람 잃고 돈 잃고, 그동안 모았던 돈, 신용 등 모든 것을 잃었죠. 앞이 캄캄하던데요.”

그때 금전적으로나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겠군요.

“사람은 마음먹기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는 마음으로 다시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동업했던 그 양반도 결국 한 푼도 못 건지고 빈털터리가 됐죠. 원수 같이 여겼는데 제가 직장생활하고 있을 때 찾아왔더라고요. 책 좀 사달라고. 그래서 전집을 사줬습니다.(웃음)”

현재 김영일씨는 가족과 함께 인천에 산다. 아침에 건설현장인 포천, 연천으로, 또는 회사가 있는 안산으로 출퇴근한다. 출근 시간만 족히 2시간 이상 걸린다. 그렇지만 김씨는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다.

체력적으로도 강해야 한다는 생각에 주말이면 인근 산을 오르거나, 퇴근 후에 산책을 하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요즘 가장 큰 고민은 무엇입니까?

“회사가 잘 돼야 합니다. 회사가 어려우면 많은 사람이 힘들어지니까요. 지금 워낙 경기가 안 좋아서 그렇지만 잘 해결해 나갈리라고 믿고 있습니다.”노후준비나 노후재테크는 많이 했습니까?

“손사래를 치며)제가 준비를 잘 한 것 같습니까?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의지가 가장 큰 노후준비 아닙니까.”

낙향이나 이민은 생각해보지 않았습니까?

“고향에 땅이 좀 있지만, 먹고 사는 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남들과 더불어 유지해가면서 사는 것이 더 중요하죠. 저보다 못한 사람들도 훨씬 많이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도 사는데…. 하루 세끼 먹고 살면 됐지. 너무 걱정하면 스트레스 받기만 하지 뭐.”

나이가 적고 많고를 떠나 회사를 그만두면 시쳇말로 힘이 빠지고 포기하기 십상입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도 고통스러워하는데요.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TV에 나오는 연예인들 말을 들어보면 수십 년 무명으로 세월을 기다리다가 힘들게 계단에 올라선 경우가 많더라고요. 물론 가능성 없는 일에 매달리면 안 되지만, 항상 준비는 해야겠죠. 그래야 기회가 왔을 때에 잡을 수 있잖아요.”

마지막으로, 요즘 행복하십니까?

“예. 이 나이에 일할 수 있고, 건강하고, 가족에 나쁜 일 없고, 어찌 보면 평범하죠. 그렇지만 그 평범함이 행복 아니겠어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