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조(協助)와 배려(配慮)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을 처음 만난 것은 중학교 3학년 때 고향의 면사무소 직원이다. 상급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호적등본을 떼러 간 것인데 당시 고등학교에 진학할 상황이 아니어서 국비라는 공군기술학교에 시험한번 쳐보려고 처음 방문한 ‘기관’이었다.

한 30분을 기다렸을까? 주소를 묻더니 힐끔 쳐다보고는 다시 한 10여분을 기다린 끝에 서류를 넘겨받았다. 그냥 좋게 받았으면 기억에도 없을 텐데 쳐다보지도 않고 던지듯이 주는 바람에 바짝 긴장해서 “잘” 받았던 것 때문에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서울에 와서는 고급 공무원들을 두루 만났다. 구청장, 장관, 국무총리,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그런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이들과 만나고 오면 기분이 그리 유쾌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아래로 내려갈수록 언짢은 기분은 더하다.

‘특별한 경우’란 자신의 영달을 위해 도움을 요청한 경우를 말하는데 예를 들면 매년 하반기가 되면 다음해의 정책개발을 해야 하고 그때마다 전문가의 아이디어를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 그때는 그래도 온순하고 조심해서 말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대단히 고압적이고 불순하다. 최근에는 많이 고쳐지긴 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공무원들은 여전히 마찬가지다.

얼마 전, 정부정책 자금을 받아 ‘사회적 기업’을 하기 위해 공무원과 최종협상을 벌이던 자리가 있었다. 협상이란 일단 제안서를 제출하고 선정이 되면 최종 지원 금액을 확정하기 위해 지원기관과 제안기관이 같이 앉아 금액을 조정하는 과정을 말한다.

이 자리에는 공무원 5명이 함께 했고, 선정된 기관 즉, 우리 측에서 두 명이 참석 했다. 여러 이야기가 오가던 중에 예상보다 많은 금액을 삭감하려 들자 나는 어느 기관보다 잘 할 수 있다며 “협조를 부탁한다.”고 했더니 갑자기 ‘시’ 음으로 “예? 협조요?”한다.

동석했던 동행자가 “아니 그게 아니라 배려 좀 해 달라는 뜻이예요.”라고 하자 이내 ‘미’음으로 누그러진다. 황당하기도 했지만 그 자리에서 굳이 단어 하나 가지고 따질 일도 아니어서 조용히 끝냈다. 협조(協助). 사전적 의미는 ‘힘을 보태어 서로 도움’이다.

이 사업은 정책자금이긴 하나 주관부처가 일자리 창출과 저소득층 소득확대를 위해 능력 있는 기관을 선정해서 그 권리를 주는 사업이다. 따라서 이 사업이 성공하려면 돈만 주면 되는 게 아니라 잘 할수 있도록 최대한 협조해 줘야 하는 것이지 온정을 베푸는 것은 결코 아니다.

배려(配慮). 사전적 의미는 ‘도와주거나 보살펴주려고 마음을 씀’이다.

그러니까 결국 “보살펴 달라고 읍소해야지 감히 돈 주는 나한테 힘을 보태주라는 거냐?”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이 돈은 그 공무원의 돈이 아니라 국민의 세금이며 그 세금을 국민복지를 위해 사업을 잘 해 달라고 오히려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사안인 것이다. 이 사업이 실패하면 우리는 포기하면 그만이지만 주관기관은 세금을 잘못 쓴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물론 잘되면 우리가 잘한 게 아니라 돈 준 기관이 위로부터 칭찬을 듣게 되고 승진에도 도움이 된다. 아니 이런 사사로운 것들을 떠나서 국민복지에 크게 이바지하는 결과가 돼서 두루 이로운 일이 된다. 좀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서로 협력’하는 것 보다는 ‘보살펴 주는’ 은혜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긴 중소기업청 프로젝트는 온갖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수 차례의 회의를 거쳐 자금 확보까지 해 놓고도 산하기관의 말단 직원한테 다소곳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원래의 목적과 상관없는 곳에 전용해서 써 버리는 ‘웃기지도 않는’ 일도 있으니 이 정도는 양반이라고 해야 할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