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 치킨 전문점을 오픈한 김모씨. 26㎡ 면적의 점포에 시설비용으로 2000여만원 정도가 소요됐다. 그런데 권리금은 시설비의 두배 수준인 4000만원이나 들었다. 목이 좋고 유동인구가 많은 상가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반적인 점포 거래에서 권리금은 대부분 피할 수 없는 거래 조건이다. 상권이 좋으면 점포 임대보증금보다 권리금이 더 비싼 경우도 있다.

세입자에겐 권리금의 대가가 독이 되기도 하고 약이 되기도 한다. 점포 계약 후 장사가 잘돼 앞서 주고 들어왔던 권리금이 갑절로 뛸 수도 있다. 반면 경기불황으로 권리금이 반토막 날 수도 있다. 점포 계약 만료 전 새 임차인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 공익을 앞세운 개발에 의해 불가항력으로 점포를 비워줘야 할 경우, 스스로 적자를 감당치 못해 폐점할 경우에는 권리금을 모두 허공에 날려버리게 된다. 그만큼 상가 세입자들 입장에서는 권리금이 민감한 사안일 수밖에 없다.

◆권리금, 법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

상가 권리금이란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지급하는 보증금 이외의 프리미엄이다. 즉 임차 점포물 내 설치된 시설물인 유형과 영업 또는 입지적 이점인 무형의 사용 대가를 말한다. 권리금은 기존 임차인과 새로운 임차인간 계약이 가장 일반적이다. 권리금 형성 유무와 책정 수준에 따라 상권과 입지의 질을 따지는 중요한 잣대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상가 권리금은 제도적으로는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단지 뿌리 깊은 관행으로 현실 속에서만 존재한다. 이 때문에 관련자들 사이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결국 지난 1월에는 용산에서 철거민 참사가 빚어졌다. 그들은 재개발로 인해 상가가 사라지면서 권리금을 돌려받을 곳이 어디에도 없었다. 약간의 이주비는 이전에 지불했던 막대한 권리금에 비해 턱없이 적은 돈이었다. 지난해 4월부터 첨예한 대립을 보여 왔던 서울시와 지하도상가 상인간의 마찰 속내에도 권리금이 쟁점이었다. 권리금이 항상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는 것은 세입자의 창업비용 중 권리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유명 아이스크림 전문점 R사의 창업비용의 경우 약 50㎡ 면적의 점포를 오픈하려면 기본적으로 가맹비, 본사 보증금, 교육비, 인테리어비 등을 포함 1억3000만~1억5000만원이 필요하다. 만약 이 업종으로 점포를 구한다면 유동인구가 풍부한 역세권, 학생 수요가 많은 학원가나 배후수요가 많은 아파트 주변 상권으로 진입해야 하는데 입지 수준은 대체적으로 A급지에 가까워야 한다. 따라서 이 경우 임차조건으로 보증금을 제외한다고 해도 권리금으로 1억원가량을 줘야 한다. 박대원 상가정보연구소장은 "용산 참사를 계기로 상가 권리금이 핫이슈가 됐다"며 "2002년 11월 시행된 상가임대차보호법에서도 계약기간을 5년 동안 보장해주는데 그쳤는데 이는 권리금을 회수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준 것일 뿐 정작 권리금에 대해서는 함구해 온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권리금을 지킬 방법은 없을까. 임대차 계약을 하면서 권리금에 대한 안전장치를 만들 수도 있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권리금을 건물주가 받고 이면 계약 등을 통해 그것을 인정한다면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도 있다. 또 계약 시 명시한 기간을 채우지 않고 임차인을 바꾼 경우 나머지 권리금은 돌려주라는 법원의 판결이 난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부분의 건물주는 권리금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이 같은 계약을 맺는 것은 극히 드문 사례다.

심지어 대리인을 내세워 기존에 임차인이 있었던 것처럼 위장해 권리금 계약을 하는 등 편법을 쓰는 경우도 있다. 선종필 대표는 "99.99%가 임차인끼리의 계약이므로 이런 계약에서 권리금을 건물주가 책임질 수는 없는 일"이라며 "그렇다면 전 임차인이 권리금을 보전해 줘야 하는데 이것 역시 비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제도적 보완 가능할까

용산 참사를 계기로 정부와 서울시에서는 현행 재개발제도의 개선방안을 마련 중이다. 서울시는 "앞으로 정부와 국회의 관련법 정비과정에 참여해 세입자들을 위한 제도가 마련되도록 노력하고 부족한 부분은 보완해 나갈 것"이라며 "자체적인 실행과정에서도 ‘도시 재개발에는 세입자들의 지위와 입장을 반영해야 한다는 지침’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권리금에 대한 제도적인 안전장치가 만들어질지 주목된다. 재개발 등으로 상가를 철거하는 경우 상가 세입자들은 권리금을 보전받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관련 전문가들은 세입자를 재개발 사업의 일원으로 끌어들여 사업 추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선종필 대표는 "최근 송파 가든파이브의 청계천 이주상인을 위한 점포의 경우 일반인에 비해 우선 분양됐지만 높은 공급가격으로 분양률이 극히 저조했다"면서 "세입자에게 단순히 우선분양권을 주는 식의 대책은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선 대표는 "단순히 보상 차원에서 접근하기보다는 개발이익 환수액의 일정부분을 할애해 세입자에게 지분권을 제공해 주는 등의 방법도 있을 것"이라며 "세입자를 재개발 이익을 공유하는 일원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재개발 사업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