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원 창업 강력한 구조조정의 여파로 실업률이 점차 늘고 있다.

특히 은행은 구조조정의 성패를 가늠하는 상징적인 업종으로 퇴직 은행원들의 사후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 11월, 한빛 외환 서울은행 등에서 1천 1백명의 명예퇴직을 시작으로 당분간 퇴직자 수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이들이 퇴직 후 재취업을 해야 하지만 은행연합회의 금융인 재취업센터에는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지난 9월 현재, 구직인원이 무려 4천 5백여명에 이르고 있고 외환은행에서 11월에 퇴직한 4백명 가운데 재취업자는 불과 4명에 그칠 정도로 재취업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처럼 재취업의 길이 사실상 막혀있는 이유는 구인대상 기업은 40대 이하의 젊은층을 원하지만 퇴직자의 74%(서울은행 기준)가 40대 이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창업밖에 도리가 없다. 우려되는 사실은 은행 퇴직자들이 선호하는 업종으로 호프집 피자집 보습학원 식당 등이며 더욱이 술집을 하겠다는 응답자도 무려 60%에 이르고 있다는 점이다

은행연합회 조사) 이처럼 자신의 경력을 살리지 못하고 전혀다른 업종을 창업했을 경우, 경기에 따른 업종 등락에 따라 머지않아 또다시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악순환을 겪어야 한다. 따라서 자신의 경력을 활용한 ‘커리어 창업’이 그 어느때보다 절실하다 하겠다. 이 길만이 롱런으로 가는 지름길이며 실패를 최소화하는 최선책이 될 것이다. 조흥은행에 근무하다 지난 98년 퇴직한 김미영씨(가명/36)는 커리어 창업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현재 그가 하고 있는 일은 재테크컨설팅인데 쉽게 말하면 돈 많은 사람들의 자산을 불려주는 사업인 셈이다.

은행의 부실여부를 따져서 거래은행을 옮겨주거나 수익률이 가장 높은 예금을 추천해 주는 일에서부터 환율에 따라 적절히 외화를 사고 파는 일도 대신해 준다. 경우에 따라서는 고객의 유학간 자녀에게 학비를 송금하되 환율을 감안해서 송금시기를 조절한다거나 경조사에 대신 입금해 주는 등의 비서업무까지 도맡아서 처리해 준다. 김씨가 쉽게 자리잡은 이유는 은행에 근무할 당시, 부유층 고객관리를 철저히 고객위주로 처리하면서 신뢰를 쌓아왔기에 가능한 일이다. 수익은 고객당 월 30~50만원의 컨설팅 수수료(Fee)인데 30여명의 고객으로부터 7백여만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서울은행에 근무했던 강부철씨(42)는 대출정보를 제공하는 컨텐츠제공업(CP)으로 월평균 3백 50여만원의 수익을 내고 있다.

신용보증기금이나 소상공인지원센터와 같은 대출기관과 여러 은행의 대출정보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서 고객별로 맞춤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제공하고 있다. 정보 수집과 가공비용을 빼면 아직은 큰 돈이 되진 않지만 대출서류 작성대행이나 알선 등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어서 수익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이처럼 은행에서 쌓은 휴먼 네트웍을 활용하거나 관련 정보를 수집, 제공하는 일은 리스크도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도 부가가치가 높아서 단순한 창업아이템 이상의 가치가 있다.

 이와같이 아직은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틈새업종으로 창업해서 성공한 사례도 있지만 앞으로 등장할 뉴비즈니스도 관심을 가져보면 좋을 듯 하다. ‘금융인력파견업’도 그 중 하나다. 금융기관의 파업이나 일시적 결원으로 임시직이 필요한 금융기관에 경력자를 파견해 주는 일종의 맨파워 뱅크다. 기존의 유사업종이 없진 않지만 금융인만을 특화한다면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금융정보지’사업도 추천할만 하다. 은행 대기석에 금융정보지를 무료로 배포하되 광고로 수익을 올리는 방법이다. 일종의 생활정보지인데 은행만을 배포지로 하는 것이다. 특정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이들을 대상으로 타겟마케팅을 하려는 기업들의 광고를 쉽게 수주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정보내용은 금융과 재테크 관련 정보로 꾸며져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은행원들의 상담결과를 보면 강박형(Obsessive) 유형이 많았다. 즉, 진실을 추구하는 형으로 꼼꼼하며 세밀해서 실수가 적고 다른사람보다 노력하는 타입이면서 관찰력이 뛰어나다는 얘기다. 이러한 타입에게는 ‘사업계획서 작성대행업’도 권장할만 하다.

 인지하다시피 사업계획서는 창업초기나 대출을 필요로 할 때 주로 작성한다. 하지만 중소기업인의 경우는 전문지식이 대부분 부족해서 누군가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회계법인에 의뢰하면 1천만원 이상을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실제로 전문가 한사람이 불과 3~4일이면 작성할 수 있기 때문에 건당 2백여만원만 받아도 수익성은 충분하다. ‘동업종 애널리스트’도 강박형 유형에게는 적합하다. 선행기업을 벤치마킹해서 제공해 주는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연체고객 관리업’도 좋다. 월부 판매업체나 후불제 통신업체들은 연체고객 때문에 애를 먹고 있는데 그렇다고 일일이 방문해서 채권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바로 이러한 포기고객을 헐값에 매입해서 대신 받아내는 사업이다.

이 경우, 보통은 연채액의 10~30% 이내면 매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하기에 따라서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만일 인맥이 확고하다면 ‘펀드(Fund) 주선업’으로 큰 돈을 벌 수 있다. 요즘 벤처기업들이 대부분 투자를 받고 싶어하지만 루트가 없어서 주저앉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 시기를 잘 활용하면 쉽게 입지를 굳힐 수 있을 것이다. 필요하다면 벤처기업의 CFO로 취업해서 경험을 쌓는 방법도 좋다. 능력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취업 주선이 가능하다.

만일 창업하기 힘든 상황이라면 환전상이나 현금인출기를 빌려 수익을 나누는 ‘ATM링크업’을 부업으로 갖는 것도 권장할만 하다. 이 외에도 ‘성공.실패사례 정보제공업’이나 ‘인터넷 금융포털 사업’도 금융인에게는 안성마춤이다. 미국에서는 블랙리스트에 오른 고객의 신용을 회복시켜주는 이른바 ‘신용복원 컨설팅’(www.qualitycreditrepair.com)이 각광을 받고 있는데 국내에도 신용불량자 모임(www.credit815.org)이 있을 정도로 유효고객은 많기 때문에 검토할만한 아이템이다. ‘청산비즈니스’도 미국에서 인기업종이다. 일종의 재고처리업인데 회계문제까지 짚고 처리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 은행원에게 잘 어울리는 업종이라 하겠다. 일본에서는 ‘서비스 잠행평가업’이 소기업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잘 나가는 점포나 기업의 서비스기법을 잠행조사해 주는 사업이다. 이처럼 전직 경험을 바탕으로 창업할 수 있는 아이템은 무궁무진하다. 특히 언급한 업종들은 대부분 지극히 소자본으로 창업이 가능하다는 것이 장점이라 하겠다. 비록 아이템 자체가 검증되지 않은 경우가 많지만 타당성이 입증되면 바로 창업하는 용기도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형석(hslee@busines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