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돈 못벌어도 일하는 재미 '큰 재산'

조기 은퇴하고 실버창업 뛰어든 조용준씨

직업전문가들이 말하는 '인생 2막'의 성공 비결은 '일찍 시작하라', '바닥에서 출발하라', 그리고 '전공을 살려라'. 그런 점에서 조용준(54)씨는 지극히 '모범답안'에 가까운 케이스다. 퇴직 3년 전부터 창업 준비에 들어갔고, '전무이사'란 과거를 버리고 영업부터 뛰었다. IT업체에서 일하면서 갈고 닦은 유통 전문가의 경력도 십분 활용했다. 현재 노인들을 위한 복지용구(실버용품) 1000여 종과 의료기기 4000여 종을 온·오프라인으로 유통 판매하는 조용준씨의 한 달 매출은 1억원. 아직 순수익이 많이 나진 않지만 회사 유지하는 덴 자신을 얻었다. 매출도 다달이 10%씩 늘고 있다. 창업 1년 만의 성과다.

◆창업 준비 퇴직 3년 전부터꽤 잘나가던 IT시스템 기업에서 일하던 그가 좀 이르다 싶은 51세에 조기 퇴직한 이유는 두 가지. "창업공신으로 참여했고 그만큼 열정을 쏟아 부었던 회사인데 매각이 됐어요. 계속 버틸 수도 있었지만 회사를 위해 떠날 때가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 자신의 '인생 2막'을 위한 결단이기도 했다. "50대를 넘기면 창업에 성공하기란 매우 어려울 거란 예감이 들었습니다." 2006년 12월이었다.2007년 11월 사업자 등록을 하고, 이듬해 5월 의료기기 전자상거래 브랜드인 '메디탑'을, 7월에 실버용품 판매·대여 브랜드 '스마트 시니어'를 론칭하기까지 조씨의 준비는 철저했다."재직 중에도 선진국으로 해외 출장 갈 기회가 생기면 남는 시간에 실버용품 관련 박람회나 매장에 꼭 들러 정보를 수집했어요.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미리 따 두었지요. 또 창업을 하면 영업부터 내가 직접 뛰어야 하기 때문에 회사에 있을 때 영업 분야를 자청해 필드 경험도 쌓았습니다."
 
◆'실버'가 금맥 바닥부터 시작을하지만 막상 전선에 뛰어드니 현실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노다지'처럼 보였던 실버산업이 한국 사회에선 아직 시기상조였던 것.

단순 수치로도 일본 시장과는 비교도 안 됐습니다. 일본의 65세 이상 인구는 2500만명이지만 우리는 500만명, 일본 국민소득은 4만달러지만 우리는 1만5000달러니 시장은 10분의 1도 안 되는 셈이었어요."국민의식 차이는 더했다. "개인주의 사회인 일본에서는 노인들이 자신을 위해 기꺼이 돈을 투자하지만 한국 노인들은 재산은 자식들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서 시장이 잘 형성되지 않았어요." '실버용품을 온라인으로 판매하겠다'던 애초 계획도 어그러졌다.

 "50세 이상 장년층의 10%만이 인터넷을 사용하더군요. 어버이날 자식들이 효도선물 하려고 가끔 들어올까? 만반의 준비를 했어도 허점이 많았답니다.

◆돈이 최고? 일이 최고그렇다고 포기하기엔 너무 일렀다. 일단 매출을 일으켜야 하니, 전국 병·의원에 의료기기를 온라인으로 유통하는 일을 시작했다. 지난해 7월 정부가 '장기요양보험' 제도를 시행하자마자, 그간 보류했던 환자용 침대, 휠체어, 당뇨측정기 등 용품을 전시판매장에서 팔기 시작했다.

"정부가 집에서 치료받는 노인성 질환자들의 간병 비용, 의료기구 구입 비용을 85% 지원하는 제도인데, 정책 입안 단계에서부터 예의주시하고 있었죠. 예상대로 제도가 시행되자마자 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했고요."물론 그게 끝이 아니었다. 후발업체가 곧 따라붙었고, 전국에 680개 업체, 조씨의 매장이 있는 경기도 분당만 10개 업체로 급증했다. 다음부턴 그야말로 자유경쟁. "실버용품매장 같은 지역밀착형 사업은 신뢰가 생명이죠. 쉬운 말로 '입소문'요. 그래서 마케팅 목적을 '물건을 하나라도 더 팔자'가 아니라 '최적의 아이템을 권하자'로 정했습니다. 제가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딴 이유도 그래서고요.

1주일에 하루는 고객을 만나러 제가 직접 물건 배송을 나갑니다."아직 돈을 벌진 못하지만, 그는 요즘 하루하루 사는 맛이 난다. "솔직히 실버산업은 돈의 논리로만 가면 사업이 잘돼도 일이 즐겁지 않아요. 노인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밑바탕돼야 하지요. 한번 도전해보세요. 누구나 노인이 되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