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산에 오른 사람은 지나온 과정만큼이나 이야기가 많다. 그러나 가장 많은 이야기는 그렇게 오른 산에서 끝없이 추락했다 다시 올라선 사람에게서 나온다. 건강식품 전문 회사 천호식품 김영식 회장이 그렇다. 건강식품으로 소위 대박을 맞았다가 문어발식 확장으로 IMF 때 급전직하했다. 그리고 넘어진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2008년 매출 600억 원을 기록하는 놀라운 성과를 이뤄 냈다. 누구나 어제보다 10미터만 더 뛰면 나아질 수 있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역경을 이겨 내는 힌트를 얻어 보자. 

재기에 성공한 사업가이자 성공학 강사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경영도 하고 강연도 하니 많이 바쁘겠다.  

여기저기서 강연 요청이 많다. 경제가 어렵다 보니 나 같은 사람을 더 많이 찾는 것 같다. 바쁘긴 하지만 회사 홍보도 되고 좋다. 대한민국 부자 만들려면 내가 먼저 부자가 돼야 한다. 내 사업부터 잘돼야 무슨 얘기라도 할 수 있는 게 아니냐.  반응은 어떤가.  영업 관련자들이 들으면 강연 내내 열기가 뜨겁고, 관리부는 상대적으로 덜 하다. 질문을 한 뒤 손 들라고 하면 영업부는 척척 따라하는데 관리부는 서로 눈치만 본다. 강연을 듣고 생각이 바뀌는 사람도 많다. 한번은 대학에서 강연 도중 휴대전화 문구를 바꾼 사람 손 들라고 했더니 정말 많더라. 요즘 젊은 사람들은 행동이 정말 빠르다.  건강식품 회사라 건강관리를 잘 해야겠다. 비법이 있나.  매일 아침 5시 반이면 일어나 가까운 산에 오른다. 그러면 하루 칠천 보 정도 걷는데 일반 직장인은 삼천 보 걷는다고 하더라. 아침 일찍 대중탕에 가서 한겨울에도 꼭 냉탕에 들어간다. 그러면 정신이 번쩍 든다. '쾌식(快食)', '쾌변(快便)', '쾌면(快眠)' 만한 건강관리도 없다. 특히 먹는 게 중요하다. 잘못 먹으면 병이 온다. 각종 모임에 가면 사람들은 고기 먹은 뒤 된장찌개나 냉면을 꼭 시켜 먹는데, 나는 절대 안 먹는다. 그것까지 먹으면 과식하게 된다. 위를 8할 정도만 채워야 건강하다. 우리 회사 제품에는 다이어트 제품이 없다. 먹을 거 다 먹고 살을 뺄 순 없다. “조금만 더 주세요.” 하고 싶을 때 그만둬야 한다. 대통령 중에 뚱뚱한 사람은 거의 없지 않나. 모두 건강관리하는 거다.  

건강식품 사업을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1986년에 운전을 하다 교통 사고를 냈다. 가로수를 들이받았는데 왼쪽 팔이 부러졌다. 그런데 6개월 동안 깁스했는데도 뼈가 안 붙더라. 지인이 달팽이가 좋다길래 그걸 먹었는데 한 달 만에 뼈가 붙었다. 그 계기로 달팽이 진액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IMF 때는 회사가 기울지 않았나. 그럼에도 다시 건강식품을 선택한 이유는 뭔가.  넘어진 곳에서 다시 일어나야 한다. 그래야 빨리 재기할 수 있다. IMF 때는 여윳돈으로 건강식품이 아닌 다른 분야까지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다 그랬다. 그 뒤로는 절대 한눈 팔지 않는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는 거다. 이젠 내 갈 길만 가겠다.  

부산에서 현금 보유 100위였다가 빚이 20억 원이 될 정도로 급격히 어려워졌다고 들었다. 어떻게 이겨 냈나.  

그때가 1997년이다. 여관비 아끼려고 사무실에서 잠을 잤는데 두 발을 창밖으로 내놓고 손만 떼면 떨어질 상황을 여러 번 만들었다. 돈이 너무 많다가 모두 잃고 방 한 칸에서 살려니 정말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더라. 그러다 지인으로부터 더 힘들게 사는 사람도 있는데 그 정도로 무너지면 되겠냐는 말을 듣고 죽기를 각오하고 살아보자고 결심했다. 그리고 공장에 남아 있던 강화사자발쑥진액을 팔기 위해 휴대전화 첫 화면에 “쑥을 팔자. 못 팔면 죽는다.”라고 적었다. 못 팔았으면 진짜 죽었을지도 모른다. 여관방에 묵을 땐 하도 통곡하고 우니까, 자살이라도 할까 봐 주인이 돈을 돌려주며 나가라고까지 하더라.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어서 더 힘들진 않았나.  

오히려 가족 때문에 살았다. 돈을 벌어야겠다고 이를 악물었던 이유가 바로 가족이었다. 어느 날 초등학생이던 딸아이가 “우리 집은 왜 이렇게 가난해?”라고 묻더라. 단칸방에서 사는 걸 친구들이 보고 뭐라고 했는가 보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튿날 곧장 은행으로 달려가 전 재산 300만 원을 모두 찾아 방에 뿌리면서 부자인 척했다. 회사가 무너지냐 마냐 하던 1998년 설날에는 아버지가 오뚝이를 선물하셨고 아내는 쌀이 없어도 “당신을 믿는다.”며 의지를 북돋아 줬다.  

부시 대통령에게 '산수유' 제품을 보낸 뒤 친필 사인이 담긴 답장을 받아 광고로 활용한 것도 그렇고, 태릉선수촌과 100대 기업 총수에게 마늘 건강식품을 보내는 등 마케팅을 참 잘한다. 그런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오나.   

간절히 원하면 나온다. 강화사자발쑥진액 팔 때도 늘 입으로는 “쑥쑥쑥자로 끝나는 말은 이쑥 저쑥 들쑥 날쑥.” 그러면서 다녔다. 사실 그 이전에 정말 많은 걸 팔아 봤다. 트럭에 온갖 잡화를 싣고 시골 구석구석을 다녔고, 금연 파이프 만들어 길거리 한복판에서 행인을 대상으로 팔기도 했다. 완구 만들어 팔다 망하기도 하고 리어카에 옷을 산더미처럼 쌓은 뒤 다 팔고 돌아오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감각이 생긴 거 같다.  

사업가 기질을 타고 난 건가.  

26세 때 1년 정도 군무원으로 일한 것 말곤 직장 경험이 없다. 그때부터 트럭 몰고 물건 팔러 다닌 거다. 사업도 끼가 있어야 한다. 제조업 하는 CEO를 보면 큰 회사에 납품하는 일을 많이 하더라. 나라면 그 기계로 국자라도 찍어서 직접 팔겠다. 그게 끼라면 끼가 아닐까. 천호식품은 직원 복지에 신경을 많이 쓴다. 특히 출산 장려책으로 첫째, 둘째 자녀는 100만 원, 셋째는 500만 원을 주고 2년간 매월 보육 수당 30만 원을 지급한다. 자녀는 물론 직원이 대학이나 대학원에 진학할 때도 학비를 전액 지원하는 등 중소기업으로서는 파격적인 복지 정책을 펴고 있다.  

가난을 경험해서 그런가. 

직원 복지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다.  가난을 경험해 봐서 잘 알지. 그래서 직원을 경영 파트너로 대우하려고 애쓴다. 잘해 주면 잘 따른다. 열심히 한다. 그래도 더 줘야 하지 않나 생각하는데, 어떤 CEO는 '잘해줘 봐야 나가서 사업 차린다.'고 하더라. 그러면 오히려 산업이 발전하는 것 아닌가? 직원들이 퇴직할 때까지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최대한 뒷바라지하고 싶다. 직원뿐 아니라 어려운 시기에 셋째를 낳은 고객에게도 출산 장려금을 주려고 계획하고 있다.  고객까지도? 

그렇게 퍼주다가 회사가 쓰러지는 건 아닌가.

돈을 왜 버나. 살아 있을 때 멋지게 써야 한다. 그런 말도 있지 않나. 나이 들수록 입은 적게 열고 지갑은 크게 열라고. 나는 가끔 저녁 약속이 취소되면 전체 직원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저녁 먹을 사람을 찾는다. 경영 파트너와 얘기를 많이 나눠야 하니까. 그때 맘에 드는 건배를 제안한 사람에게는 인사고과 점수를 7점까지 주기도 한다. 한 달 만근하면 5점이니, 그 점수면 상당히 높은 거다. 밥 사줘, 술 사줘, 고과 점수까지 주니 직원들이 많이 모인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모임이 많다. 50여 군데 정도? 성공하려면 사람을 만나야 한다. 단, 한가한 사람이 아니라 바쁜 사람을 만나야 한다. 바쁜 사람을 만나면 나도 동기 부여가 되고 충전이 된다.

최고 경영자 과정도 정말 많이 다녔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지금까지 열여섯 군데 다닌 거 같다. 다른 오너들을 보면 배울 게 많다. 강의 못 하는 교수라도 써 먹을 게 나온다. 그걸 직원에게도 알려 준다. 그렇게 하나 둘 다니다 보니 매번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되어 좋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기 위해, 자극 받기 위해 그런다. 

지금도 일기를 쓴다고 하던데.

IMF 때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쓰기 시작했다. 답답함을 누구에게 얘기도 못하고 수첩에 쓰게 된 거다. 그걸 묶으니 책 한 권이 되더라. 그때는 땅만 보고 걸었다. 돈 떨어진 거 없나 보려고. 이걸 쓰면서 3년이면 성공 조짐이 보이고 10년이면 부 또는 명예가 쌓인다는 걸 확신했다.  

오랜 세월 우여곡절이 참 많았는데, 어느 때보다 어렵다는 이 시기에 젊은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게 있다면.  

대한민국은 기적을 많이 만든 나라다.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 땅을 보고 영국의 한 기자는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이 나라 경제가 다시 일어설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10대 무역국가다. 모든 경기가 안 좋다고 하지만 태양은 반드시 뜬다. 중천에 떴을 때 시작하는 건 이미 늦은 거다. 새벽이 끝나기 전에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해가 중천에 떴을 때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대신 어제 하던 대로 하면 안 된다. 어제보다 10미터만 더 뛰고 조금만 더 움직여라. 당신에게도 기적이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