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다른 창업투자자들

대기업 임원으로 근무하다 퇴직한 마봉수씨(62). 여유자금은 있으나 창업을 해 본 경험이 없어서 마땅히 할 일을 찾지 못하던 차에 프랜차이즈 본사가 위탁운영을 해 주고 은행이자에 수익금의 30%를 추가 지급해 준다는 말에 용기를 내서 1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노후가 크게 걱정 될 만큼 돈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일을 하지 않고 20여년을 보낸다고 생각하면 삶에 의욕이 떨어져서다.

부부가 중앙부처 공무원인 서미영(48)씨는 최근 한 대형 유통업체 푸드코트를 운영하는 중국음식 전문 업체에 8천 5백만 원을 투자했다. 회사가 대신 운영해 주고 매출액의 8%를 보장해 주는 조건이다. 6개월이 지난 지금, 월평균 2백만원의 수익을 얻고 있는데 이대로 가면 보증금을 제외한 투자금 환수기간이 2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유통업체 특성상 다소의 리스크는 있지만 업종 자체가 쉽게 퇴출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해서 결단을 내렸다.

이처럼 최근 투자만으로 수익을 거두려는 색다른 창업투자 방법이 인기를 얻고 있다. 실물경제가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다 퇴직한 동료들이 대부분 창업에 실패한 사례들을 보면서 직접 운영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만으로 수익을 얻고자 하는 경우는 크게 4가지 유형으로 나타나고 있다. 마봉수씨와 같이 전문업체에 위탁운영을 맡기고 수익을 보장받는 경우, 전문가를 경영자로 영입하여 투자자가 함께 동업하는 경우, 부동산을 갖고 있으나 매매가 되지 않아 점포와 물물교환을 통해 창업한 경우, 그리고 2막 인생을 대비한 해외투자 등이다.

치킨호프전문점 바비큐보스(www.ddf.co.kr)의 안산 본호점은 위탁운영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은행 지점장에서 퇴직한 두 사람이 1억 6천만원을 투자해서 월 750만원의 고수익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이 브랜드를 선택한 배경은 다른 프랜차이즈업체와는 달리 물류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고, 특히 육가공 제조업을 20년 이상 해온 중견업체여서 신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처음부터 위탁운영으로 하려 했던 건 아니다. 창업박람회에서 여러 업체들과 상담을 해 보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지만 막상 해당 가맹점들을 둘러보니 상담내용과 다른 경우가 많았고, 특히 대부분의 업종이 자존심 강한 50대가 하기에는 버거운 생각이 들어서였다.

홍대 근처에서 ‘월향’이라는 유기농 현미막걸리 전문점을 운영하는 이어영(29)씨도 스스로가 놀랄 만큼 대 성공을 거둔 경우다. ‘규칙도 두려움도 없이(에디션더블유)’ 저자이기도 한 그녀는 선후배들이 십시일반 투자한 돈으로 창업 1개월 만에 월 매출 5천만 원을 올리는 괄목할만한 성과를 냈다.

인테리어에 돈을 들이기보다 막걸리 맛을 제대로 내는 게 더 중요하다는 판단아래 전국의 브랜드 쌀로 빚은 팔도 막걸리에다 일본 푸드스타일리스트의 도움을 받아 개발한 메뉴로 승부 했는데 그게 적중했다. “지금은 돈으로 승부하는 규모의 경제가 아니라 머리와 가슴으로 승부하는 감성경제 시대”라고 정의한 그녀는 일정하게 맛을 유지시켜주는 막걸리 디스펜서 개발에 맞춰 프랜차이즈로 발전시켜 보겠다는 당찬 계획을 갖고 있다.

언급한 두 사례와 같은 위탁운영은 직접운영에 자신이 없거나, 안착 후 인수받기를 원하는 창업 무경험자들에게 호조건이 될 것이다. 특히 소유한 건물이 비어 있거나 상가분양에 애로를 겪고 있는 건설업체가 도입하면 분양에도 직접적인 도움이 된다. 다만 위탁운영자는 개인보다 노하우가 풍부한 창업전문가나 프랜차이즈본부에 맡기는 것이 효과적이다.

또 다른 사례를 보자. 양윤석(43)씨는 전문가를 영입해서 공동대표로 창업한 경우다. IT기업 엔지니어로 근무하다 명예 퇴직한 그는 창업컨설팅업체의 도움을 받아 전문가를 추천 받았다. 그동안 줄곧 소프트웨어 개발에만 전념하다보니 실물경제에는 문외한이라 혼자 창업한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결정한 이 방법은 수익은 다소 줄더라도 안전한 길을 갈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그가 프랜차이즈 전문가 윤기영(36)씨와 함께 창업한 브랜드는 퓨전 보쌈전문점인 ‘피기바래보쌈(www.piggybarae.com). 김치나 야채 위주의 기존 보쌈과 차별화하기 위해 한방보쌈, 기름기를 뺀 바비큐 보쌈 등을 개발해 런칭했는데 창업 6개월 만에 4개의 가맹점을 오픈했다. 프랜차이즈 대표브랜드들도 연간 10개 가맹점을 내기가 어려운 요즘이고 보면 기대이상의 성과다. 양윤석씨는 “적게 벌더라도 안전하게 가기 위해 선택한 방법인데 오히려 파이를 키우게 되니 실제 수익이 훨씬 많다.”며 싱글벙글이다.

인기드라마였던 커피프린스를 브랜드로 한 커피전문점(www.coffeeprincekorea.com)도 전문가를 영입해서 크게 도약하고 있다. 지난 2년간 투자자들이 직접 운영해 왔으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프랜차이즈 전문가이자 경영학 박사인 박민규(42)씨를 영입해서 시스템의 안정은 물론 발전적 비즈니스모델로 새롭게 구축했다.

영업이 활력을 되찾자 그동안 관심을 갖고 지켜보던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매달 2개 이상씩 가맹점이 늘고 있다. 투자자들은 드라마로 익히 알려진 브랜드라 쉽게 안착할 줄 알았는데 인지도가 높아도 경영능력이 수반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는 의견들이다.

위의 두 사례는 창업에서 파트너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 주고 있다. 자신이 부족한 역량은 다른 사람의 능력으로 보완해서 안전하게 전진하는 좋은 방법인 것이다. 비단 점포사업 뿐 아니라 벤처, 제조업에 이르기 까지 상호 보완관계인 파트너를 만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멀리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을 창업자들은 필히 새려두면 좋다.

퇴직 예정자인 인천의 황해수(52)씨는 창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여분으로 사 둔 23평형 아파트를 내놨다. 그러나 1년이 넘도록 매매가 이루어지지 않고 물어오는 사람도 없어서 급기야 물물교환 방식을 택했다. 시가로 1억 8천만원인 이 아파트를 월매출 3천만 원 수준의 점포와 맞바꾸려는 아이디어를 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현재 호프전문점, 와인바 등과 조건을 조율 중이다. 아파트의 실거래가, 점포의 실 매출액이 검증되면 계약하기로 잠정 합의한 상태다.

홍천 내면에 전원 주택지를 소유하고 있는 김상구(55)씨도 유사한 경우다. 4년 전,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에 대한 기대감으로 4천여 평을 구입했으나 당시 평당 15만원이었던 땅값이 지금은 9만원에도 사려는 사람이 없어 적당한 사업이 있으면 맞바꿔서 다시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김씨는 곧 금리가 오를 것으로 보여 지금도 버거운 대출이자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마음이 급하다. 특히 최근 경매현황을 보면 보통은 시가의 80%선에서 낙찰되던 것이 60% 수준에서도 응찰자가 나서지 않고, 3차 이상 유찰되는 물건만도 갈수록 늘고 있다는 점을 더욱 불안해하고 있다. 경매물건도 안 사는데 제값을 주고 당장에 필요하지 않은 전원 주택지를 사겠느냐는 생각에서다.

실제로 올 들어 경매 낙찰가가 60%를 밑도는 경우가 허다하고, 물건도 지난해에 비해 30%이상 늘었다. 아파트 역시 인천, 원주와 같은 물량 과다지역의 경우는 매매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계약자들도 중도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무리하게 투자한 사람들은 공포의 아파트가 되 가고 있다. 미분양과 물대로 받은 아파트를 합하면 40만개에 이르기 때문에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향후 아파트로 재테크 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쌍방의 니즈를 채워줄 수 있는 물대물의 방식은 앞으로 상당히 유효할 것이다.

해외투자로 눈을 돌리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미국령 휴양지 괌(Guam)에 여의도 크기만한 종합 레저휴양단지를 건설 중인 괌코리아인터내셔널(www.gki.kr)은 종합 상업시설과 어학연수원 등에 투자자를 모집할 예정인데 벌써부터 문의전화가 쇄도하고 있다.

이 회사 대표인 제이슨김(53)씨는 “투자문의자들은 대부분 퇴직 예정자들로 작은 점포 하나를 구입해서 노후에 따뜻한 휴양지에서 지내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며 기대감을 보였다. 괌정부의 세제혜택과 3년 이내에 미군과 가족 등 6만여 명이 유입될 것이라는 뉴스도 한몫을 하고 있다. 실제로 이곳 땅값은 3.3m2당 30~50만원으로 우리나라 어느 도시보다도 싸다.

중국에 투자하려는 사람들도 점차 늘고 있다. 죽이야기(www.jukstory.com) 쪼끼쪼끼(www.jjokki.com)와 같이 중국에 진출해서 성공한 프랜차이즈 업체에는 중국에서의 성공사례가 알려지면서 투자 상담이 하루 두세 건에 이른다. 전에 없던 관심이다.

중국의 아파트를 사는 사람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부동산 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도 있지만 그보다는 미국의 위엔화 절상압력이 커지고 있어서 조만간 환차익이 상당할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다.

이처럼 창업자들은 최근 들어 새롭고 다양한 투자방법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예측 불가능한 글로벌 경제에다 수렁에 빠진 서민경제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전후세대의 퇴직시기가 맞물리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