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과 기업가정신

만감이 교차했다. 영화 베테랑을 보고 나서다. 통쾌함과 씁쓸함이 함께 밀려왔다. 악당은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다. 악행이 일상이다. '맷값 폭행사건' '땅콩회항' 등 현실 속 '재벌 갑질'이 오버랩된다. 서도철 형사(황정민)는 정의의 수호자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하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다. 롯데 '형제의 난'으로 촉발된 국민의 반재벌 정서가 견고해질까 두려워서다. 라디오에서 뉴스가 흘러나온다. 한국의 기업가정신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22위라고….

한국 경제는 해결할 일들이 산더미다. 저성장 기조는 장기화되고 있다. 중국발 금융쇼크도 얼쩡거린다. 경제체질 개선과 구조개혁도 절실하다. 오죽했으면 공공, 교육, 금융 등 4대 개혁의 최우선 순위에 노동을 올려놨을까. 곳곳에서 골든타임을 외치고 있다. 이때 반재벌 정서가 걸림돌이 되면 어떻게 될까. 그간 어렵사리 합의한 개혁의 디딤돌들은 '말짱 도루묵' 신세가 된다.

조선.철강.자동차의 닮은꼴은 무엇일까. 한국의 주력산업이다. 그런데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매출 감소와 경쟁력 악화로 허덕인다. 중국에 치이고 일본에 밀린다. 조선 '빅3'는 4조7509억원의 적자를 냈다. 현대.기아차 2·4분기 영업이익은 두자릿수로 감소했다. 철강산업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5월까지 수출액이 11% 넘게 줄었다. 돌파구도 안 보인다.    

'혁신에너지가 없다' '창업세대의 역동적인 기업가정신을 찾아보기 어렵다' '현실 안주에 급급하다'. 한국 기업의 민낯들이다. 혁신과 도전을 꺼리는 기업과 함께 각종 규제철폐에 미온적인 정부가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반면 세계는 기업가정신이라는 벤처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고 있다. 혁신을 통해 가치창출을 하는 벤처가 고용과 성장을 이끌고 있다.

미국의 힘은 어디서 나올까. 벤처다. 창조와 혁신으로 무장된 구글.페이스북.트위터가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거뜬히 해낸다. 중국이 부상하는 이유도 다를 바 없다. 2010년 창업한 샤오미 등 젊은 기업들이 중국의 '굴기'를 이끌고 있다. 중국은 하루에 1만개꼴로 창업이 일어난다. 기업가정신이 살아 움직인다. 중국의 화수분이다.

경제학자인 조지프 슘페터는 기업가정신을 "시장에서 변화를 추구하는 혁신자의 혼"이라고 정의한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기업가는 언제나 변화를 탐색하고, 대응하고, 기회로 활용한다"고 했다. 변화를 지향하는 것이 곧 기업가정신이라는 뜻이다. '도전' '모험' '혁신' '창조'로 함축된다. 여기에 '근면' '뚝심' 같은 요소가 추가되면 금상첨화다.

얼마 전 시가총액 8조원에 이르는 다음카카오가 1980년생 벤처투자가 임지훈씨를 신임 대표로 내정했다. 다음카카오 측은 발탁 배경으로 "강하고 속도감 있는 변화와 혁신"을 들었다. 공교롭게 같은 날 미국에서도 세계 최대 인터넷기업인 구글에 43세의 새로운 최고경영자(CEO)가 등장했다. 구글이 '알파벳'이라는 지주회사 체제로 개편하면서 인도 출신 순다르 피차이가 래리 페이지의 뒤를 잇게 됐다. 신선한 파격이다.

이병철, 정주영, 박태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으로 미답의 길을 개척한 창업세대다.

그들의 성공요인은 과감한 투자, 창조적 마케팅, 시장 트렌드 선점 등으로 요약된다. 한마디로 줄이면 기업가정신이다.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산업 베테랑'이다.

출처 : 파인낸셜뉴스 김승중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