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글로벌 사업가에 도전합니다”-박준뷰티랩 CEO 벤치마킹

◇ 박준 박준뷰티랩 대표이사 ◇

한 사람을 한 단어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박준 박준뷰티랩 원장 겸 대표는 첫 눈에 그를 표현할 수 있는 한 단어가 바로 떠올랐다. ‘패셔너블’. 정말 패셔너블하다.

우선 안경부터가 눈에 확 들어온다. 체크무늬 안경 자체도 눈에 띄는데, 거기다 양쪽이 짝짝이다. 왼쪽 안경알 아래쪽은 아예 체크무늬가 없다. 너무 오래 착용해서 무늬가 벗겨졌나 싶었는데, 알고보니 ‘콘셉트’란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수제 안경이라 구입했다고 한다. ‘남과 같은 나’를 거부하는 사람이라 소품 선택 하나도 다르구나 싶다.

잠시 안경에 고정됐던 시선이 아래쪽으로 내려간다. 유난히 희게 느껴지는 흰색 셔츠 위에서 뭔가 번쩍거린다. 큐빅인지 다이아몬드인지 모를 장식이 100개 정도 박혀 있는 큼직한 목걸이다. 웬만한 여성도 쉽게 소화하기 어려울 듯한 목걸이가 꽤나 근사하게 잘 어울린다.

이제 한국 패션의 아이콘쯤이 된 박준 대표가 최근 활발한 날갯짓을 시도하고 있다.

개인숍을 벗어나 프랜차이즈로 대형화를 모색한 지 벌써 10년. 지난 10년간 이룩한 ‘대형화’를 기반으로 앞으로 10년은 ‘글로벌화’에 승부를 걸어볼 심산이다. 이를 위해 ‘박준뷰티랩 새로운 10년’ 프로젝트를 가동시켰다.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가동을 위해 오랫동안의 청담동 시대를 떨치고 학동으로 본사도 이전했다.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각 부서를 넓은 공간에 한데 모아 보다 체계적으로 사업을 이끌어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이처럼 의욕적으로 ‘새로운 10년’을 준비하고 있는 박준 대표는 헤어디자이너업계에서도 소문난 입지전적 인물이다.

전라남도 해남의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박 대표는 대부분의 농사꾼 집 아이들이 그러했듯 일년 365일을 늦잠 한번 제대로 못 잘 정도로 노동에 시달리며 살았다. 이런 생활은 14세 무렵, 달걀 판 돈 중 일부를 몰래 모아 서울행 기차표를 산 그 날로 끝이 났다. 그러나 서울에 올라와서도 매일같이 힘든 노동을 해야 하는 사정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제대로 학교를 다니지도 못한 14세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구두닦이나 아이스바 장사꾼, 공장 노동자나 보조사무원 정도밖에 없었던 탓이다. 박 대표 역시 구두닦이와 아이스바 장사를 병행하며 새로운 기회를 모색했다.

■ 14세에 상경, 22세에 미용계 입문 ■

‘박준’이란 이름 두 자를 세상에 떨치게 해준 미용업계와의 인연은 스무살도 더 넘은 22세 때 이어졌다. 성공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서울에서 자리를 잡은 덕에 가끔 고향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을 정도로 안정을 찾은 시절. 그 날도 서울 시내 모 다방에서 친구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고. 화장실을 다녀오다 마침 문이 열려 있던 한 미용실 풍경을 엿보게 됐다. 그때 문득 든 생각. ‘저 일을 해보면 어떨까’. 무작정 미용실에 들어가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어찌 된 사연인지 원장은 ‘그럼 내일부터 출근하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그렇게 박 대표는 미용업계에 발을 담그게 됐다.

낮에는 미용실에서 고객의 머리를 감겨주거나 청소하는 게 주 업무인 힘든 보조원 생활을 하면서 밤에는 정화미용고등기술학교를 다니며 미용기술을 익히는 주경야독의 생활을 했다. ‘남자미용사’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이다 보니 아무리 노력해도 박 대표를 향한 온갖 수군거림은 멈출 줄을 몰랐다. 박 대표는 이런 수군거림을 모두 참아내고 드디어 헤어디자이너가 된 데 이어 81년에는 ‘박준미장타운’이라는 미용실을 내면서 독립하는 작은 성공을 일궈냈다.

이후 비로소 국내 1호 남성 헤어디자이너로서 인정받고 각광받기 시작하는, 박준 대표 최고의 호시절이 시작된다. 이 같은 성공을 발판으로 95년에는 프랜차이즈 사업도 시작했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한창이던 시절, 구멍가게로는 더 이상 승부가 불가능하다고 보고 대형화를 모색하던 차에 내린 결론이다. 그렇게 시작한 프랜차이즈가 이제 10년 만에 100여개에 육박한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듯, 이제 박준 대표는 제2의 전성기를 꿈꾸고 있다.

‘박준이란 이름에 기대어 성장해온 회사를 이제 자신이 없어도 충분히 굴러갈 수 있도록 시스템화하는 데 이어 자유무역협정(FTA) 시대를 맞아 글로벌기업으로 새롭게 도약한다’는 게 새로운 캐치프레이즈다. 이를 위해 각 분야 전문가를 영입하고 매뉴얼을 만드는 등 시스템화 작업이 한창이다. 이런 작업이 제대로 결실을 맺게 되면 코스닥 상장을 추진하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박 대표가 ‘제2의 도약’을 꿈꾸게 된 것은 지난 2000년 갑작스레 혈혈단신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2년반 동안 공부하고 돌아온 이후부터다. ‘내가 최고’라는 자만심에서 벗어난 것은 물론, ‘내가 아니면 안 된다’던 아집에서도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고. 이후 ‘박준의 미용실’이 아닌 ‘박준이 대표로 있을 뿐인 미용 기업’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방안들을 강구해나갔다. 그런 고심이 하나하나 결과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게 바로 요즘이다.

■ 박준 브랜드 헤어케어 제품 선보여■

시스템화와 동시에 박 대표는 ‘박준뷰티랩’의 영역을 넓히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GS리테일과 손잡고 지난 3월 말에 출시한 ‘박준의 촉촉한 황토’ 헤어케어 시리즈가 그 첫 작품. GS리테일이 운영하는 백화점, 마트, 편의점 등에서 팔리게 될 ‘박준의 촉촉한 황토’는 유통업체와 헤어디자이너가 손잡고 내놓는 국내 첫 헤어 전문 브랜드다.

또 조만간 ‘창포’를 원재료로 만든 헤어케어 제품을 전국 유통망에 깔 예정이다. 단옷날이면 우리 조상들은 으레 창포물에 머리를 감곤 했다. 그만큼 창포가 두피와 머릿결에 좋다는 것은 이미 역사적으로 입증된 터였다. 개인적으로 창포의 효능에 관심을 가져온 박준 대표는 오래도록 이것의 제품화를 추진해왔고, 드디어 상반기 안에 결과물을 내놓게 된다. 이뿐 아니다.

‘상업적인 공간’에서 ‘문화적인 공간’으로 미용실의 변신을 추진하고 있는 중. 예를 들어 미용실 한쪽에 지압을 통해 두피를 개선시키는 ‘헤어 스파실’을 여는가 하면, 다양한 베스트셀러를 구비해 고객들이 잡지책 대신 교양서적을 읽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마련했다. 또 각 좌석마다 LCD 모니터를 설치해 커트 중에도 개인 모니터로 각종 영상물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FTA 추진으로 미용업계가 어려워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서, 박 대표는 오히려 이를 기회로 해외 진출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는 청사진을 내놓음으로써 도리어 화제가 되고 있기도 하다. ‘한국인들의 손기술은 이미 입증된 것으로, 헤어디자이너만큼은 세계적인 경쟁력이 있다’는 게 박 대표의 주장이다.

실제로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이후 많은 외국 브랜드들이 국내에 들어왔지만 그리 성공적인 사례를 만들어내진 못했다. 반면 미국 6개점을 비롯해 전 세계에 13개 점포를 보유하고 있는 박준뷰티랩의 해외 매장에는 갈수록 현지인 고객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는 전언이다.

헤어디자이너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영광을 누려봤다는 박준 대표의 앞으로의 소망은 무얼까. 박 대표는 ‘교육을 통해 자신을 능가하는 훌륭한 후배를 많이 배출해내는 것’이라고 거리낌 없이 답했다. 후배 양성을 위해 아직도 그는 일주일에 하루는 직접 고객의 머리를 손질해주고,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는 트렌드에 적응하기 위해 틈 날 때마다 자신의 사무실에 마련된 마네킹을 상대로 연습을 한다. 이뿐 아니라 100여개의 프랜차이즈 매장을 일일이 관리하며, 바쁜 와중에도 원광대 뷰티디자인학부 교수로서 학교 강의에만 온전히 하루를 바치고 있기도 하다.

박준뷰티랩은 어떤 회사?

지난 81년 박준 대표가 설립한 개인숍 ‘박준미장타운’이 박준뷰티랩의 모체다. 이후 박 대표는 개방화시대에 경쟁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대형화가 필수라 판단하고 95년 (주)피앤제이(현 박준뷰티랩)를 설립, 본격적인 프랜차이즈사업에 나선다.

프랜차이즈사업 11년째인 2007년 현재 박준뷰티랩은 전 세계에 100여개가 넘는 가맹점을 보유하게 됐다. 국내에 90개, 미국 6곳을 포함한 해외 가맹점 13개다. 올 들어서는 GS리테일과 손잡고 ‘박준의 촉촉한 황토’라는 브랜드의 헤어케어 제품을 내놨는가 하면, 자체적으로 ‘창포’ 헤어케어 제품을 생산해 유통할 계획이기도 하다. 지난해는 가맹점으로부터의 로열티로만 14억원의 수익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