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외식업 진출 붐…체면보다 ‘현금’

먹는 게 남는 장사’란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특히 요즘 같은 불경기에 현금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는 외식 사업은 더욱 매력적이다. 자본금과 시스템을 갖춘 대기업들이 속속 외식 사업에 뛰어드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외식 사업에 진출하는 이유도 저마다 다양하다. 고객 편의, 이미지 제고, 시너지효과 등등. 그 가운데도 패션 업체와 식품 업체의 외식 진출이 부쩍 늘었다. LG패션·제일모직 고객 편의·이미지 제고 효과 패션 업체 라이벌인 LG패션과 제일모직은 나란히 외식업계에 이름을 올렸다.

먼저, LG패션은 지난해 12월 LF푸드를 통해 해산물 레스토랑 마키노차야(1개점)를 53억원에 인수했다. 마키노차야는 하와이 등 미국 내 7개 매장을 갖고 있는 해산물 레스토랑 전문점이다. LF푸드는 LG패션이 100% 출자한 회사로서 외식 사업에 본격 진출하기 위해 설립됐다. 이어 LF푸드는 올 4월 5억원을 들여 하코야(2개점)를 인수했다.

하코야는 2006년 오픈한 일본식 전통 라멘 전문점으로 순수 국내 브랜드다. LF푸드 측은 메뉴 선정을 위해 일본 현지 100여개 라멘 전문점의 메뉴를 조사한 뒤 한국인 입맛에 맞는 5가지 메뉴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구자민 LF푸드 사장은 “업종은 다르지만 패션과 외식 브랜드의 주 고객층이 일치한다는 측면에서 시너지효과를 노릴 수 있다”고 진출 배경을 설명했다.

올해 말까지 마키노차야는 3개점, 하코야는 20개점까지 매장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제일모직도 지난 3월부터 10꼬르소꼬모 의류매장에 이탈리아식 카페 레스토랑을 함께 운영 중이다. 정통 스테이크 요리부터 와인, 디저트, 음료까지 제공된다. 쇼핑을 한 후에 같은 곳에서 편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이 때문에 제일모직 측은 본격적인 외식 사업 진출이 아닌 고객 편의 차원에서 하는 사업임을 강조했다. 패션 업체가 외식 사업에 진출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고객 편의’와 ‘이미지 제고’로 요약된다. 심문보 제일모직 홍보과장은 고객 편의를 ‘슬로 쇼핑’으로 설명했다.

그는 “(10꼬르소꼬모)매장 콘셉트를 여가나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 손님들이 먹고 즐기고 쇼핑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패션 업체로서 레스토랑의 이미지도 고려되는 사항이다. 패션과 외식의 이미지를 맞추기 위해선 레스토랑도 가능한 고급스런 분위기를 연출해야 한다. 구자민 사장은 “현대인의 생활에서 패션과 음식은 하나의 이미지로 연결되기 때문에 외식도 BI(Brand Identity)에 신경써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패션 업체의 외식 사업 진출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94년 이랜드가 피자몰로 외식 사업에 진출한 이후 2002년 FGF, 2004년 FnC코오롱, 2006년 MK트렌드와 예신퍼슨스, 지난해에는 톰보이와 지엔코가 레스토랑과 카페를 선보였다. 남양유업·매일유업 판매 확대와 소비자 트렌드 파악

남양유업 일치프리아니 매장 안.식음료 업체도 외식 사업은 관심사업 1순위다. 유가공 업체 라이벌인 남양유업과 매일유업의 진출이 눈에 띈다. 남양유업은 이미 2002년 강남 논현동에 이탈리아 레스토랑 일치프리아니를 오픈했다. 현재 압구정 현대백화점, 신세계 본점, 여주 신세계첼시 등 5개 점포를 운영 중이다.

최재호 남양유업 홍보과장은 “치즈와 우유를 좀 더 다양하게 활용하자는 차원에서 레스토랑 사업을 시작했는데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아 사업을 확대하게 됐다”고 말했다. 매일유업도 인도요리 전문점 달(Dal)을 운영 중이다. 지난해 5월 서울 스타타워에 2호점을 낸 데 이어 올 2월 청담동 도산공원에 3호점을 오픈했다. 2001년 사주 일가가 운영해온 서울 소격동 선재아트센터 내 인도 레스토랑 달을 체인화했다.

매일유업은 매장을 통해 적극적으로 사업다각화를 노린다. 분야는 치즈와 와인이다. 매일유업은 그동안 치즈(상화)와 와인수입(레뱅드매일) 자회사를 운영해왔다. 회사 측은 레스토랑 운영을 통해 치즈와 와인에 대한 매출을 높이고 수시로 바뀌는 시장 트렌드와 고객의 취향을 파악하겠다는 생각이다.

일례로 지난해 매일유업에서 출시된 인도식 요구르트 ‘라씨’는 달에서 판매해오던 것을 상품화해 성공한 케이스다. 남화연 매일유업 외식사업부 이사는 “식품 업체로서 까다로운 고객들의 요구를 매번 상대해왔기 때문에 레스토랑 운영도 큰 어려움이 없다”며 “치즈나 와인도 직접 제조, 수입하기 때문에 제품 공급도 한결 수월하다”고 말했다. 식품 대기업인 농심도 외식 사업에 출사표를 던졌다.

농심은 올 3월 서울 강남역 인근에 카레 전문점 ‘코코이찌방야’를 열었다. 일본 카레업계 1위인 하우스식품이 만든 카레로 이찌방야 외식 체인을 통해 판매된다. 이미 외식업에 진출한 기업들도 외식 사업을 확장하는 추세다. 베이커리 전문 기업 SPC그룹은 지난해 12월 영국식 유기농 레스토랑 ‘퀸즈파크’를 서울 청담동에 열었다.

유기농 콘셉트를 내세우다 보니 가격은 주변 가게보다도 20% 이상 비싸다. 하지만 매출은 꾸준히 증가 추세다. 송세진 퀸즈파크 과장은 “오픈 이후 한 번도 매출이 떨어진 적이 없다. 하루 매출도 처음 예상보다 2배 이상 높다”고 말했다. SPC그룹은 퀸즈파크 성공에 힘입어 그릴 전문 레스토랑(라그릴리아)과 와인 바(니르바나)를 차례로 연다는 계획이다.

운영 노하우 없어 실패하기도 이처럼 업체들이 외식 사업을 앞 다퉈 나서는 이유는 바로 돈이 되기 때문이다. 내수 침체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먹는 외식 사업은 좋은 수익 사업이 된다. 가장 최근 조사에 따르면 외식 산업 시장은 2005년 50조원 규모였다. 반면 국내 패션시장 규모는 2000년 19조원에서 2006년 21조원으로 6년간 약 2조원 느는 데 그쳤다.

식품시장 규모 역시 2004년 33조1811억원, 2005년 33조3352원으로 제자리에 그쳤다. 한편 대기업들의 외식 사업 진출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이는 곳도 많다. 외식업의 ABC도 모른 채 수익성만 좇아 사업을 한다는 지적이다. 일례로 현대종합상사는 사업다각화를 위해 2003년 하반기 맥주집 ‘미요센’과 회전초밥집 ‘미요젠’을 열었다. 하지만 회사는 결국 손해만 보고 2년 만에 철수했다.

최근 식품 분야의 경험이 없는 대우전자부품이나 한빛소프트가 사업 목적에 식품제조업 및 외식 사업을 추가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비판을 받는다. 실제, LG패션의 외식 사업 진출을 두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컸다. 이에 대해 구자민 사장은 “투자 규모는 3년간 200억원을 넘기지 않을 계획이며 수익성이 검증된 브랜드만 운영한다는 원칙”이라고 말했다.

강희승 굿모닝신한증권 애널리스트도 “사업규모나 투자금액이 크지 않아 패션 사업에 미치는 영향력은 미미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원석 신씨화로 사장은 “자금력과 조직력을 갖춘 대기업이 침체된 프랜차이즈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실전 경험이나 아이디어 부족으로 막대한 자금력을 쏟고도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