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큐 치킨 전문점 ‘훌랄라’ 김병갑 CEO

소리없는 강자…‘난 오너 아닌 머슴’

김병갑 사장은 가로 일(一)자 손금을 가졌다. 흔히 말하는 ‘대운(大運) 손금’이다. 손바닥 중간에 굵게 자리 잡은 모양새가 고속도로처럼 쭉 뻗었다. 이런 손금을 가진 이는 전 국민 가운데 10% 미만이라고 한다.

손금 딱 그대로, 김 사장은 요즘 무한질주 중이다. 속도 제한 없는 아우토반에서 달리는 것처럼 거침없이 주행 속도를 올리고 있다. 참숯으로 구운 바비큐 치킨 전문점 ‘훌랄라’는 올 들어 5개월 동안 60개 가맹점을 새로 오픈했다. 전국 가맹점 수는 400개를 넘어섰다. 특이한 점은 400여 개 가맹점 가운데 절반 이상이 최근 2년 사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김 사장은 1999년 9월 이천시에 첫 점포 문을 열면서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4년 이상을 기반 닦는 데 투자했다. 이 기간 동안 확보한 가맹점은 100개 정도에 불과했다. 느리지만 신중하게 한 발씩 내디딘 시기였다.

그러나 모든 면에 자신감이 붙은 후 공격적으로 가맹점 확대에 나섰다. 단기 승부를 보려는 이들이 많은 프랜차이즈 업계에선 드문 경영 방식이다. 그 결과 훌랄라는 현재 바비큐 치킨 프랜차이즈 가운데 독보적인 1위로 올라선 것은 물론 프랜차이즈 업계 전체를 통틀어 가장 높은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사실 ‘훌랄라’는 서울 사람에겐 그리 친숙한 이름이 아니다. 치킨 마니아라면 ‘나도 모르는 가맹점이 400개나 된다’며 놀랄 일이다. 이는 김 사장이 펴 온 ‘외곽 공략 전략’ 때문이다. 1999년 9월 이천시에 직영 1호점을 개설한 이후 안양 안산 등 수도권에 집중 출점하며 전국 곳곳으로 세력을 뻗어나갔다. 서울보다는 지방에서 유명한 치킨 브랜드인 셈이다.

배달이 아닌 레스토랑 영업을 주로 하며 고정 고객을 늘렸다는 점도 유명세가 더딘 이유다. 많은 치킨 브랜드가 ‘배달’에 절대 비중을 두지만 훌랄라는 그렇지 않다. 저녁 7~8시부터 퇴근길 직장인, 가족 단위 고객이 매장을 찾아 바비큐 치킨과 맥주를 마시는 게 훌랄라 매장의 풍경이다. 본사가 배달을 금지하는 게 아닌 데도 가맹점주들이 원치 않는 경우가 많다. 이는 굳이 배달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매출이 오른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주변에선 그를 ‘소리 없이 떠오른 강자’라고 부른다. 같은 외식 업계에서조차 그를 모르는 이가 아직도 태반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언론에 얼굴을 내민 게 손에 꼽을 정도인 데다 주된 동선 역시 용인 본사와 서울사무소, 가맹점 등으로 단순하다.

다만, 그가 빠짐없이 얼굴을 내미는 곳은 따로 있다. 신규 가맹점이 오픈하는 날이면 그곳이 어디든 어김없이 달려간다. 오픈에 앞서 적어도 두세 차례 점포를 방문해 일부터 백까지 체크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현장맨’. 그는 “뛰어다니는 게 나의 일”이라면서 “신규 가맹점이 첫출발을 잘해야 전체 가맹점이 잘되고, 결국 훌랄라 식구 모두가 잘된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가맹점 지원에 각별한 것은 김 사장의 첫 번째 성공 비결이기도 하다. 그는 가맹점과 가맹본부의 ‘관계’에 대한 철학이 남다르다. 김 사장은 “가맹점과 가맹본부가 더불어 성공하는 게 프랜차이즈의 기본”이라면서 “가맹점주가 1차 고객인 만큼, 그들 마음속에 깊숙이 파고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백 명의 가맹점주와 본부가 서로 100% 만족할 수는 없지만 어느 업체보다 충분히 ‘교감’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덕분에 훌랄라의 가맹점 폐점률은 업계 최저 수준이다. 8년 동안 문을 닫은 가맹점 수가 10개를 밑돈다. 어느 업종보다 경쟁이 치열해 평균 폐점률이 높은 분야가 치킨 업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폐점하는 가맹점에 죄의식을 갖지 않는 가맹본부가 너무 많다”면서 “전 재산과 인생을 걸고 새 출발하는 창업자들을 실패하게 만드는 것은 죄악”이라고 말했다. 또 “가맹점주는 본부 성장을 위한 희생양이 아니다”라고 강한 어조로 덧붙였다. 그는 가맹점을 함께 성장하는 ‘가족’으로 보지 않고 ‘딛고 일어설’ 대상으로 보는 일부 업체들을 맹렬히 질타했다.

김 사장의 이런 의지를 가맹점주들도 잘 알고 있다. 가맹점주 교육이라도 있는 날이면 김 사장은 늘 같은 질문을 한다. “저를 만난 걸 후회합니까?” 물론 답은 “아니오.”

그렇다 보니 가맹점주들도 김 사장을 친밀하게 대한다. 사장이 팔 걷어붙이고 가맹점을 챙기면서 자연스레 생긴 현상이다. 인터뷰를 하는 날에도 김 사장의 휴대전화는 밤늦게까지 울려댔다. 전국에서 가맹점주들이 장사를 하며 부딪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김 사장에게 상담하기 위해서였다.

김 사장은 “일일이 응대하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지만, 점주들이 나를 믿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면 무성의하게 대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난 오너가 아니라 머슴”이라며 사람좋은 웃음을 터트렸다.

‘더딘 발걸음이 결국 이긴다’

흔히 보기 힘든 가맹본부와 가맹점의 밀접한 관계는 특별한 프랜차이즈 시스템과 깊은 관련이 있다. 훌랄라는 여느 프랜차이즈와 달리 지방에 지사를 두지 않는다. 대부분의 프랜차이즈가 지방 가맹점을 모집 관리하기 위한 지사망을 가맹 계약을 통해 확보하고 있지만, 훌랄라는 서울사무소에서 400여 개 가맹점을 일괄 관리하고 있다. 김 사장은 “다이렉트 관리를 통해 얻는 이점이 많다”고 말했다. 중간 단계인 지사를 없앰으로써 식자재 등 공급가를 낮추는 반면 가맹점과 본부 수익을 크게 높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훌랄라의 또 다른 성공 비결은 외식업의 기본인 맛과 품질에 있다. 김 사장은 프랜차이즈 사업에 앞서 닭고기 등 식자재 유통 사업과 소스 제조공장을 운영했다. 이 과정에서 쌓은 경험과 지식이 훌랄라 프랜차이즈 사업에 큰 경쟁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선 맛에 관해선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훌랄라는 고정 팬을 거느린 브랜드다. 참숯에 구워 기름을 뺀 후 직접 만든 허브 소스를 입힌 맛이 한국인 입에 딱 맞는다는 평을 듣고 있다. 기름을 쓰지 않아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트랜스지방 논란에서도 자유롭다. 이 때문에 훌랄라 고객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다. 매콤 달콤한 맛에다 다이어트에 좋다는 느낌까지 갖게 하니 여성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조리 방법의 혁신도 빼놓을 수 없다. 김 사장은 1년여 연구를 통해 ‘매직 화이어’라는 독창적인 참숯구이 기계를 개발했다. 3마리의 닭을 12분 만에 초벌, 두벌구이 할 수 있는 이 기계는 닭의 쫄깃한 맛을 살리는 것은 물론 조리 시간, 인력 절감의 효과를 가져다 주고 있다. 구이 원료로 고가의 참숯만을 고집하는 것도 소비자에게 신뢰를 얻는 요인이다.

김 사장의 올해 목표는 ‘신규 점포 300개 확장’이다. 그리고 평균 25평 중소형 매장 위주였던 가맹 전략을 50평 이상 대형 매장 확대로 수정했다. 또 서울 역세권 주요 상권도 집중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외곽 시장을 장악하고 이제 서울로 본격 진격하겠다는 복안이다.

출발은 아주 좋다. 안테나숍으로 만든 100평 규모 서울 신림점은 연일 손님이 줄을 설 정도로 성업 중이다. 김 사장 자신도 “이 정도로 인기 있을 줄 몰랐다”며 놀랄 정도다.

김 사장의 장기 목표는 훌랄라를 글로벌 치킨 브랜드로 키운다는 것. 이와 함께 국내 4000개 가맹점 돌파를 ‘고지’로 정했다. 이렇게 되면 그는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신기록을 세우는 최고경영자(CEO)가 된다.

그는 “대한민국은 내 시장이 아니다”는 말로 의지를 내보였다. 처음 그랬던 것처럼 차근차근 준비해 이르면 2009년 첫 해외 진출을 시작할 계획이다. 훌랄라와 김 사장의 성공 스토리는 ‘때로 묵직하게 내딛는 더딘 발걸음이 승리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