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인디언 <와바> - 이효복 사장

Give&Take냐, Take&Give냐

수년 전 인디언의 실체를 접했을 때 필자는 세 가지 점에서 당황스러웠다. 인디언의 고결한 영혼, 미국을 개척한 백인들의 야만성, 이 같은 사실을 모르고 지내온 필자의 무지가 바로 그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고결한 종족은 인디언이다. 그들 말대로 ‘얼굴 붉은 사람들’의 정신과 생활, 그리고 삶에 대한 태도는 기품 그 자체다. 그들의 말 하나하나와 행동은 바로 종교다. 그들만큼 신과 합일된 종족이 있었던가. 그들만큼 자아가 충만되고, 겸허하고, 절대 정직했던 종족이 있었던가.

‘미타쿠예 오야신’은 인디언들의 인사말이다. 그것은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또는 ‘모두가 나의 친척’이라는 뜻이다. 이 인사말은 우주에 대한 이해를 심오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필자는 확신한다.

세계맥주전문점 <와바> 이효복 사장(38). 그를 생각하면 가끔 가슴이 벅차오른다. ‘우리 시대의 인디언’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가 살아온 인생도 인디언 역사와 닮았고, 그의 정신과 삶에 대한 태도도 인디언과 닮았다. 절대자에 대한 신념도 마찬가지다. 그러고 보니 꽁지머리를 한 그의 모습도 ‘얼굴 붉은 사람’과 흡사하다.

그를 설명해주는 특질 중 필자가 주시하고 있는 것은 기브 앤드 테이크(Give&Take)다. 이는 또한 인디언을 극명하게 설명해주는 말이다.

기브 앤드 테이크(Give & Take)와 테이크 앤드 기브(Take & Give).

먼저 주느냐, 먼저 받느냐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갈린다. 주는 순서가 중요하다. 먼저 줘야 한다. 당신이 먼저 줘야 주고받음의 흐름이 시작된다. 대상은 모든 것이다. 물질적인 것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실체가 있는 것이든 실체가 없는 것이든 먼저 주면 승자가 된다. 당신이 먼저 상대방의 말을 듣고 존중하고 받아들이면 된다. 그러면 상대방도 당신의 말을 듣고 존중하고 받아들인다.

이는 또한 승자의 가치를 가르는 기준이다. 영속적이고 활기에 찬 승자가 될 것인지, 단속적이고 일회적인 승자가 될 것인지는 ‘기브 앤드 테이크’를 실행하는 마음의 성실도로 나눠질 것이다. ‘기브 앤드 테이크’로 세상을 여는 이 사장의 얘기를 풀어보자.

타클라마칸 사막을 걷다

여름 태양의 열기가 마지막 기승을 부릴 무렵인 1998년 8월 말. 두 명의 초라한 사내가 부산역에서 힐끔힐끔 바라보는 주변 시선에도 불구하고 부둥켜안고 울고 있었다. 그들의 헤어짐은 안쓰러웠다. 보내는 자, 떠나가야 하는 자 모두 힘들어하는 것이 역력했다.

이 사장은 주머니에 있는 돈을 털었다. 모두 2만 원. 그 돈을 받지 않으려는 친구 손에 꼭 쥐어줬다. 이제 헤어지면 언제 다시 볼 지 기약할 수 없는 친구다. 이 사장 곁을 마지막까지 지켰던 친구이기도 했다.

“모든 희망이 사라졌지요. 절망이 온몸을 휩쓸고 있을 때였습니다. 사막에 외따로 떨어진 느낌이었습니다.”

중앙아시아에 자리잡고 있는 타클라마칸 사막은 위구르어로 ‘이곳을 뚫고 지나가는 자, 다시 돌아오지 못하리라’라는 뜻이다. 먼 옛날 대상(大商) 행렬도 이곳에서는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1998년 여름 부산은 이 사장에게 바로 다름 아닌 타클라마칸 사막이었다.

1997년 말 외환위기 전후로 국내에서는 콜라텍이 유행하고 있었다. 그가 손댄 것은 바로 콜라텍 인테리어 공사. 처음에는 돈도 제법 손에 쥐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콜라텍이 우후죽순 생겨나 업소매출이 떨어지자 업주들이 인테리어 잔금 결제를 미뤘다. 공사대금 미수가 쌓이면서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 먼저 베푸는 자세가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이는 인디언이 미(美)대륙에 상륙한 백인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친 것이 문제를 일으킨 것을 연상케 한다.

4개월 전인 그해 봄 그가 부산 서면에 온 것도 인테리어 공사 때문이었다. 이곳에서는 거꾸로 업주에게 자금을 다 받아 놓고 공사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미리 받은 돈으로 급한 불을 끄다 보니 마무리공사를 하지 못한 것이다. 일종의 사기를 친 셈이다.

그는 사기혐의로 고발되는 두려움보다 자신을 믿고 따라준 협력업체와 직원들, 그리고 처갓집으로 쫓기듯이 들어간 아내와 어린 아들에 대한 죄책감에 몸을 떨어야만 했다. 여관비가 밀려 노트북마저 잡히고, 이제 그가 지니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부산 서면의 한 여관방. 밤새 잠 못 이루던 이 사장은 먼동이 트기 전 여관을 나왔다.

어디로 가야 할지….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파리텍사스’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 트래비스처럼 그의 발걸음은 무기력했다. 황폐해 보이는 한 젊은 남자의 목적 없는 걸음. 그는 부산 번화가인 서면거리를 활보하는 게 아니라 열사의 사막 한복판을 헤매는 지친 나그네일 따름이었다. 걸음 한 발짝마다 절망이 묻어 있었다.

때맞춰 비는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고스란히 비를 맞으면서 걸었다.

한참을 걷던 이 사장이 돌연 발걸음을 멈췄다. 교회 입구에 붙여진 성경 글귀가 보였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중에 알고 보니 마태복음 11장 28절에 나오는 구절이었다.

교회 안에는 사람들이 듬성듬성 앉아 새벽기도를 하고 있었다. 이 사장은 자신도 모르게 교회 바닥에 주저앉아 그들처럼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그는 종교에 관심이 없었다.

절망의 끝자락에서 만난 신(神)

그의 얘기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문이 신(神)이다. 사업하고 신이 무슨 연관이 있느냐고 반문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는 신과의 만남을 통해 재기불능 상태에서 벗어났고 사업을 번창시켰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신의 뜻에 따라 사업을 전개할 것이다.

새벽기도. 한참을 울부짖으며 기도를 하고 있으니 무엇인가 울컥 올라왔다. 가슴이 갑자기 가벼워지고 머리가 맑아졌다.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길로 공사현장을 찾았다. 그런 용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예전 같으면 그의 성격상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잔금을 주시면 공사를 끝낼 수 있습니다.”

콜라텍 사장과 고위 경찰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한참 동안 그를 바라보더니 이 사장에게 돈을 내밀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일을 마치고도 이 사장은 혼자 두 달 여 동안 부산에 남아 있었다. 세 군데 다른 공사장에서 아르바이트로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주머니가 조금 볼록해졌다. 그 돈마저 그는 돈이 필요한 주변사람들에게 나눠줬다. 다시 빈손. 그러나 일이 풀릴 것 같은 예감에 그다지 걱정은 되지 않았다.

“이것을 기복신앙이라나요.”

일이 풀리려나. 좋은 일이 이어졌다.

그해 가을 부산에서 올라온 그는 신용보증기금 창업자금을 받게 된다. 5000만 원이란 거금.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사업재기는 웨스턴바로 시작했다. 지난 1996년 승승장구하던 사업 가도를 처음으로 망가뜨린 아이템도 웨스턴바다. 바로 이 점이 이효복을 이해하는 황금률(黃金律)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본성이 밝고 올바르면 화를 복으로 바꿀 수 있다. 선한 마음은 복의 씨앗이다.

신용보증기금 자금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선한 마음이 하늘을 움직였다고 필자는 믿고 있다. 네 명의 대상자 중 최악의 조건이었던 그가 선택된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처갓집으로 주민등록을 옮기는 와중에 누락되었던 주거불명자였던 그가, 서류상 최악 조건인 그가 5000만 원을 받은 것이다.

“이 사장의 살아 있는 눈빛을 높이 샀습니다.”

신용보증기금 이현만 과장의 말이다.

그 돈으로 서울 마포구에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20만 원짜리 사무실을 얻었다. 사무실 앞 건물에는 1층에 칼국수집, 2층에 용봉탕집이 있었다.

‘저 자리면 맥주 바가 잘 될 텐데….’

그 집을 웨스턴바 <텍사스>로 바꾸게 해 대박을 터뜨렸다. 소문이 꼬리를 물었다. 1999년 겨울 얘기다. 내친 김에 이후 2000년까지 1년 새 16개 웨스턴바 인테리어를 했다. 한마디로 일감 폭주였다. 이 기간 중 사업하는 과정에서 빚진 것을 모두 갚았다. 단 신용보증기금에서 빚진 돈만은 갚지 않았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매년 20여 가지 연장 서류를 준비하면서 당시 어려웠던 시절을 되새김질하기 때문이다. ‘1998년 여름 부산’은 그에게 더없는 동기부여를 하고 있는 셈이다.

같은 맥락에서 <와바> 본사 인원을 20명 이내로 제한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부산 현장에서 마지막 직원들을 내보낼 때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더군요. 앞으로는 더 이상 가맹사업 전개를 못해도 직원들을 내보내지 않을 생각입니다. 20명이면 언제라도 수용할 수 있습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와바>는 직원 이직이 거의 없다. 업계 현실에 비춰볼 때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비즈니스가 따뜻함으로 승화된 경지다.

아빠를 그리워하는 병

재기를 위해 몸부림치고 있을 때 뜻밖의 사건이 벌어졌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하단다.

1999년 어느 날 아내로부터 빨리 처갓집으로 오라는 호출을 받았다. 당시는 아내와 아이를 처갓집에 맡기고 재기를 위해 뛰어다닐 때였다.

“호원이가 수시로 ‘틱 틱’하는 소리를 내요. 정서불안이 심해요.”

지금 10살인 호원이가 유치원에 다니기 전에 있던 일이다.

한걸음에 달려갔다. 그러지 않아도 아이에게 몹쓸 짓을 하고 있다는 자괴심에 빠질 무렵이었다. 근 2년 동안 아이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처음 1년은 너무 힘들어서, 그리고 나중 1년은 재기하느라 바빠서 아이를 찾지 못했지요.”그는 즉시 아들을 안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명은 강박증. 원인은 자신이었다. 아빠를 그리워해서 생긴 병이란다. 그는 병원바닥에 주저앉았다. 얼마나 소중한 아들이었던가. 그런 아이의 가슴에 못을 박은 자신이 너무나 야속했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무재능을 한탄했다. 모두들 떠나보내는 과정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았던 자존심이 산산이 부서졌다. 부서진 자존심 더미 위에서 그는 서글피 울었다. 그가 훗날 아빠학교를 열심히 다닌 것도,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아이와 함께 보내는 것은 이때의 아픔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렇게 1999년은 흘러갔다. 눈물과 한탄과 절망을 씹어가며 그는 20세기를 보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21세기가 밝아왔다.

프랜차이즈 <와바> 전개

역시 처음 그를 괴롭혔던 문제는 여전히 문제로 남아있었다. 콜라텍 공사 당시만큼은 아니지만 인테리어대금 미수가 또다시 시작됐다.

“찔끔찔끔 들어오는 잔금이 문제였지요. 대금 상황에 따라 ‘이 실장’ ‘자네’ 등 저를 부르는 호칭도 수시로 변하더군요. 화가 났습니다.”

그는 그러나 문제를 분노로 해결하지 않았다. 그 동안 사업으로 단련한 경험이 그를 현명하게 만든 것이다. 인테리어 업계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바로 브랜드. 자신의 브랜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잔금을 안 주면 확 간판을 내릴 수 있는 자신의 브랜드가 절실했다. 프랜차이즈를 준비했다.

기브 앤드 테이크의 면목이 드러난 대목이다. 먼저 주었는데 상대방은 주지 않았다. 주지 않는다고 싸울 필요는 없다. 거래를 끊으면 그만인 것이다. 그래서 태어난 것이 <와바>다.

‘한번 와서 봐라’는 뜻의 브랜드 <와바>를 서울 신문로에 냈던 게 2001년 2월. 역시 겨울 끝자락 무렵이었다. 얼음이 채워진 아이스 바, 맥주를 쌓아올린 맥주신전, 나중에 도입해 주목을 끌었던 눈 내리는 스노우 바 등이 젊은이들의 발길을 끌어들였다. 직영점도 없는 상황에서 숨 돌릴 틈도 없이 10호 점을 개설했다. 그 해 8월 ‘인토외식산업’이란 법인을 설립, 본격적으로 프랜차이즈 사업을 벌였다. ‘인토(人土)’란 말 그대로 ‘사람이 중심이 되는 기업’이란 뜻이다.

2006년 1월 현재 <와바>는 국내 180여 개, 중국에 6개 점포로 성장했다. 가맹점 매출은 지난해를 기점으로 500억 원을 돌파했다. 1개 점포당 매출이 3억 원에 육박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지난 2004년에는 425억 원 매출에 1개 점포당 2억8000만 원 매출을 기록했다.

<와바>의 진격에 힘입어 이 사장은 최근 제2브랜드 구축에 나섰다. 2005년 4월 서울 명동에 직영 1호점을 오픈한 <화로연>. 참숯화로구이 전문점 <화로연>은 식품위해요소 중점관리기준(HACCP) 인증을 받은 농가에서 사육한 돼지고기만 납품받기 때문에 위생과 맛을 모두 충족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가맹점 전개속도는 다소 느린 편이다. 직영점을 포함 가맹점 숫자가 아직 10개를 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사장이 가맹점을 쉽게 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사장의 생각은 조심스럽다.

“국내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1브랜드가 성공한 업체 중 2브랜드가 성공한 사례가 없습니다. 1브랜드가 망가진 상태에서 2브랜드가 성공한 사례는 있지만….”

아직도 직영점을 통한 시스템을 갖추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얘기는 또한 남들에게서 좀처럼 들을 수 없다. 필자는 제2브랜드 제3브랜드를 연이어 내면서 기염을 토하는 사업가(혹은 장사치)를 많이 봐왔다.(언론 특히 신문사 기자들은 그들의 허언장담을 그대로 전달하고, 이를 믿은 창업자들은 1년이 채 안돼 통곡을 하고, 이게 대한민국 창업계와 언론의 현실이다)

필자가 그를 겸허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이런 마음가짐 때문이다. 그의 말대로 <화로연>이 <와바>를 돋보이게 하는 성공브랜드로 태어날지는 좀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필자는 낙관한다. 이효복이 하는 사업이니까.

사업의 시작1 - 현장이 교과서다

그는 ‘천생 사업가’다. 여기서 말하는 ‘천생 사업가’란 젊은 날 그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사업 기초를 다지며 사업 감각을 익혔다는 뜻이다. 어렵지 않은 가정형편에도 불구하고 군복무 중(방위 근무) 또는 학교 재학 중 그는 틈틈이 돈을 벌려고 애썼다. 겨울철 고구마장사를 하더라도 남다른 마케팅을 적용하는 수완을 보였다. 군 제대 후 그가 처음 자신의 사업을 벌인 것은 주목할 만하다. 남대문시장에서 옷가게 점원으로 일하던 그는 생수사업의 가능성을 보았다.

“밤 늦게까지 장사를 하는 남대문상인들은 항상 목 말라하더군요. 옷 먼지 탓으로 목이 칼칼해 매점을 가 봐도 탄산음료뿐 물은 없었어요. 보리차 끓여먹던 시절 생수를 얼려서 팔았지요.”

사업 시작은 남대문 시장에서 점원으로 일한 지 딱 100일째 되는 날이었다. 의미를 만드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 때 그의 나이가 만 23세였다.

규모의 크기와 관계 없이 현장에서 사업 기회를 포착한 이 사장에게 갈채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성공한 기업이나 기업가들에게서 볼 수 있는 현장위주 경영. 도요타를 만든 ‘3현주의(三現主義)’도 바로 이 같은 현장위주 경영을 말하지 않는가. ‘3현주의’란 ‘현장에서, 현물을 보고, 현실을 파악한다’는 뜻이다. 이는 오늘날 도요타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이끈 경영요소로 손꼽힌다. 제품이 아니라 시장으로부터, 생산자가 아니라 고객으로부터 출발하는 자세는 그 후 이 사장 경영전략의 핵심이 된다. 현장을 중시하는 그의 얘기를 들어보자.

“스타벅스를 보세요. 서울 삼성역에서 역삼역까지 그 짧은 동선에 여덟 개가 있습니다. 다 잘돼요.”

지역에서 따라서는 <와바>를 집중 출점한다는 전략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그가 자신 있게 하는 말이다. 집중출점 전략이 대기업 논리든 경영학자 논리든 그것은 중요치 않다. 현장에서 얻은 지식을 현장에서 풀어보는 솜씨가 매섭다는 얘기다.

단 100만 원의 사업자금으로 시작한 생수사업이지만 그는 여기에서 사업 재미에 흠뻑 빠졌다. 자신이 현장을 분석하고 선택한 게임에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는 것에 특히 고무되었다. ‘경영은 선택’이라는 명제를 얻고, 훗날 이를 적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사업의 시작2 - 다양한 업종을 섭렵하다

1992년 대학에 복학한 그는 모든 수업을 야간으로 신청했다. 생수사업으로 돈 버는 재미에 빠져 낮에 일할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상가분양 부동산 회사. 정식직원이 아니라 영업에 따른 인센티브 조건 임시직이었다. 그때 3년간 부동산 현장을 돌아다녔던 게 현재 입지를 보는 시야를 키웠다고 한다.

1994년 8월 졸업 후 자영업자로 나섰다. 취업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부동산 일로 번 2100만 원을 종자돈 삼아 서울 정릉에서 책대여점을 시작했다. 이후 비디오방, 포켓볼, 노래방, 소주방 등을 열었다. 당시 뜨고 있는 신종 업종들이었다. 그는 이들 아이템을 1년 이상 영업한 적이 없었다. 조금 잘 된다 싶으면 소위 권리금을 받고 팔았다.

“죽은 점포를 살리는 일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치고 빠지기 작전을 벌였지요. 당시로서는 그게 최고인 줄 알았습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고 했던가. 소위 권리금장사로 2년 새 자본금을 10배로 늘린 그는 1996년 서울 돈암동 성신여대 입구에서 웨스턴바를 차렸다가 쫄딱 망했다. 한순간에 2억 원이라는 돈이 날아갔다. 정신이 확 들었다. 다행히도 그의 인테리어 솜씨를 눈여겨본 주변 상인들이 일거리를 줬다. 그의 따뜻한 인간관계도 한 몫 거들었다. 인간관계는 비즈니스의 중요한 요건이다. 인간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카네기는 ‘한 사람의 성공은 15%는 전문적인 기술에 달려있으며 나머지 85%는 인간관계에 달려 있다’고 설파한 바 있다.

이때부터 전문 인테리어 사업자로 나섰다. 번듯한 간판 없이도 실력이 있다는 소문에 힘입어 그의 사업은 날로 번창했다. 비디오방은 물론 노래방 소주방 예식장까지 설계해줬다. 앞서 언급한 콜라텍까지 손길을 뻗친 것은 물론이다.

비즈니스는 仁이다

양자간 어려운 대면의 시간이다. 피차 어렵게 자리를 마련했다. 미묘한 것은 가게를 접는 당사자보다는 이사장이 더 힘들어 보였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주장한 ‘애정갈구형’ 특성이 남보다 강한 탓일 것이다. 남이 어려운 것을 보지 못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를 듣기 힘들어하는 게 애정갈구형 인간의 기질이다.

와바를 그만두겠다는 가맹점주와의 만남이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목돈이 필요하다며 본사에서 어떻게 선처가 안 되겠느냐는 게’ 만남의 요지였다.

이사장으로서도 난감했다. 이 같은 경우 본사가 어떻게 해준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도 없고, 생각도 해 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먼저 상대방에 대한 동정이 일었다. 그의 얘기를 듣다보니 마음이 어두워졌다. 눈물이 났다. 다른 각도로 생각하니 ‘와바가 경쟁력이 있었으면 이렇게 폐점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자괴심도 들었다. 쓸데없는 자괴심이다.

그는 고스란히 가맹개설비용을 내줬다. 전례가 없는 사례다.

그러나 몇 달 후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이번에는 장사가 안 된다며 트집을 잡았다. 이사장으로서도 하고픈 말이 많았지만 꾹 참고 가맹개설비용을 내줬다. 그게 3건,4건으로 늘어났다. 그에 따라 내부직원의 반발이 심해졌다. 이런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도 문제였다. 회사경영에도 차질이 생겼다.

“가맹개설비용을 내주는 것은 비즈니스 전개상 악영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합니다. 계약과 신의성실의 원칙에도 어긋나는 것입니다.”

양자를 만족시키는 방안을 마련해야만했다. 그가 선택한 것은 폐점하는 가게의 집기를 적정가격에 사주는 것이었다. 이후 그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양자가 절충안을 마련한 것이다.

와바는 그동안 3%인 6개의 가맹점이 피치 못할 사정을 포함, 이런저런 이유로 폐점했다.

폐점대응사례를 듣다보면 맹자의 사단설(四端說)에 나오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생각하게 된다. 그를 통해 필자는 비즈니스는 인(仁)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백인을 긍휼하게 여긴 인디언을 보게 된다.

따뜻한 겨울 1

다시 겨울. 날씨가 급전직하로 떨어진 날 스키장을 찾았다. 스키장은 필자하고 별개의 세계로 여기며 살아온 인생. 스스로 찾을 리는 없다. MT 장소가 공교롭게도 스키장으로 잡혔을 따름이다.

무척 추웠다. 근래 들어 이같이 추운 겨울은 보지 못한 것 같았다. 거친 바람으로 숨이 턱턱 막힐 정도였다. 서둘러 스키장 콘도로 들어섰다.

웅성거리는 소리, 소란스러운 몸짓, 로비는 이미 활기찬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 가운데 웃음기를 머금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업무상 스키장을 찾은 우리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굳이 얘기하자면 겨울철 스키장은 ‘행복’이었다. 그러나 필자는 이들 무리 중 한 명이 아니었다. 로비 귀퉁이 자리 잡은 의자에 혼자 파묻혀 밤이 깊어가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누가 보면 궁상맞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한참 동안 있었다. 그런 필자에게 누군가 속삭였다.

“언젠가부터 겨울이 따뜻하게 여겨지더군요.”

누군가. 그렇게 말한 사람이 누군가.

따뜻한 겨울2

“겨울이 따뜻하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

2001년 12월 이효복 사장 가족은 호주로 해외여행에 나섰다. 해외여행은 의미가 깊었다. 결혼 후 처음 가는 여행이었다. 이전에는 단 1박2일 국내여행도 하지 못했었다. 처음에는 사업을 한다고, 그리고 나중에는 바닥으로 추락한 사업을 일으켜 세우느라 여행은, 더구나 해외여행은 꿈조차 꿀 수 없었던 사치였다.

“공사 현장만 10여 개, 통장에는 1억5000만 원이라는 거금이 들어있어요.”

그에게 겨울은 어떤 의미일까.

“겨울은 항상 추위를 몰고 왔습니다. 겨울 한복판에서 재기를 꿈꿔왔고, 그리고 겨울 끝자락에서 일상을 탈출하는 꿈을 꿨지요.”

그러고 보니 군고구마, 생수, 텍사스, 와바 등 그의 사업역정에 나타난 주요한 이력은 모두 겨울철과 인연이 있었다. 처음 인연은 고달팠지만, 그 고달픔이 달콤한 기억으로 자리 잡을 줄 몰랐다고 그는 수줍게 고백한다. 2001년 겨울은 그렇게 지나갔다.

항상 겨울은 그에게 따뜻하리라.

자아가 충만한 사람

기브 앤드 테이크(Give&Take)는 자아가 충만한 사람에게 발견되는 특질 중 하나다. 자아가 충만한 사람일수록 현실적이다. 주위 말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이 모든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한다. 언제든지 타인에게 배우려는 자세를 보인다. 귀를 열고 항상 문제에 대한 더 좋은 해답을 찾는다. 그런 자세는 때론 약하다는 의미와 연결될 때가 있다.

그러나 진정한 해답은 우리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때 나오는 것이다. 진짜 세상은 서로 밀접하게 연계해 영향력을 주고받는 것이다. 모든 것은 연관돼 있고, 그 연관성의 질이 성공과 실패, 그리고 성공의 크기를 가늠하는 중요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는 항상 자신을 낮추려고 노력한다. 먼저 주려고 노력하고, 상대방이 주지 않으면 받으려 고 굳이 애쓰지 않는다.

그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가끔은 숨이 막힌다. 그는 모든 사람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 하듯 예의바르게 대한다. 인위적인 태도가 아니라 진실이 담뿍 담긴 눈을 들어 상대방을 바라본다. 이럴 때 필자는 난감해진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가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는 위대한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특질 중 하나다.

에필로그

‘바람에 일렁이는 파도가 조개들 널린 바닥을 뒤덮듯, 우리 부족이 모든 대지를 뒤덮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 시절은 오래 전에 떠나갔고, 우리의 위대한 부족들도 잊혀져 갔다. 우리가 다 사라진다 해도 나는 슬퍼하지 않으리라. 얼굴 흰 형제들이 이 대지를 다 차지한다 해도 나는 그들을 비난하지 않으리라. 그것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며, 우리 자신의 책임이기도 하니까.’

1854년 시애틀 인디언 추장 연설문 중 한 구절이다.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연설문이다. 세상사에 지쳐 마음이 강팔질 때면 필자는 이 연설문을 읽는다. 그러면 마음이 조용히 가라앉는다.

인디언 추장 연설문 속에 가끔 이 사장 모습이 오버랩 된다. 상상 속의 이 사장은 독수리 깃털 모자를 쓰고 사업가 정장을 했다. 그런 상상만 해도 필자의 얼굴에는 빙그레 웃음이 번진다.

다시는 야만스런 백인의 횡포에 쫓겨 가는 인디언이 없어야 한다. 그는 자랑스러운 우리 시대의 인디언이며, 이를 사업가적 영역에서 훌륭히 증명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와바의 경쟁력>

<와바>는 천편일률적인 생맥주 전문점에서 벗어나 ‘놀이’와 ‘재미’가 있는 웨스턴바라는 새로운 개념을 정립했다. 다양한 고객 취향에 맞춰 스노우바, 아이스바, 카지노바, 양주바 등 다양한 인테리어를 접목해 기존 호프집의 ‘식상함’을 탈피했다. 특히 스노우바는 ‘눈’을 특별한 것으로 여기는 동남아지역이나 중국 등지에서도 반응이 좋다.

맥주, 양주, 칵테일 등 200여 종 주류 메뉴는 ‘원하는 것을 마실 수 있는 곳’이라는 인식을 주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