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CEO가 되려면"  -현대중공업 최길선 사장

아무나 못하는 일을 해낸 사람들. 우리는 이들을 영웅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뛰어난 기업을 이끌어 가는 최고경영자(CEO)도 분명 영웅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영웅들의 공통점은 과연 뭘까. 이에 대해 사상가 토머스 칼라일은 이렇게 말했다. "성실이 모든 영웅의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깊고 위대한 성실 말이다."

한국CEO연구포럼과 머니투데이가 지난달 7일 공동주최한 `제1회 한국 CEO 그랑프리'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은 최길선(60) 현대중공업(138,500원 2,500 +1.8%) 사장.

조선업 외길 30년을 걸어온 그의 인생관은 매우 소박했다. "그저 제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해 나갈 뿐입니다."

# CEO가 된 비결

최길선 사장을 만나기 전, 정보수집을 위해 인터넷을 이 잡듯 뒤졌다. 하나라도 더 알면 보다 부드러운 만남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그 흔한 인터뷰도 몇 해 전인가 딱 두 번뿐. 조선 업황에 대한 간단한 언급 두어 마디가 전부였다.　

"소비재 산업이 아니라서 CEO가 외부에 나설 필요가 없습니다. 배를 만드는 공급자나 배를 사가는 수요자도 모두 한정돼 있지요. 서로가 각자 실력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또 이 넓은 조선소를 경영하려니 다른 일에 신경쓸 겨를도 없었구요."

최 사장은 서울대 조선공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조선업 한 분야에서만 30년 넘게 일했다. 현대미포조선 사장 등 계열사 근무를 제외해도 현대중공업 한 곳에서만 20년 이상 일했다. 평사원에서 시작해 최고경영자 자리에까지 오른 비결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히 전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CEO가 되겠다는 생각을 품어본 적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 대신 일을 잘 해보려는 욕심은 아주 강했습니다.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다보면 전공과 관계없는 다른 분야의 일도 많이 배우게 되지요. 이렇게 현장에서 배운 것들이 나 자신을 성장시키는 데 있어 학교에서 받은 교육보다도 훨씬 큰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너무나 평범한 대답이었다. "전 처세술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 테크닉엔 익숙하지도 않구요. 적을 만들지 않고 모두의 기분만 맞추다간 정말 필요한 일이 하나도 이뤄지지 않습니다. 충돌하는 일이 있더라도, 싫은 소리를 듣는 한이 있어도, 우직하게 할 일은 해야 합니다. 어차피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내가 해야 합니다."　

단 번에 승부가 나는 일은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요즘 좋은 집안에 좋은 대학 나온 젊은 친구들의 입장에선 신입사원이 하는 초보적인 일이 성에 안 찰겁니다. 그래서 고시를 봐서 한 번에 올라가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많지요. 하지만 그런 것은 하나의 자격일 뿐, 성숙되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밑의 일부터 알아가면서 차근차근 검증받는 것도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습니다."

# 조선 강국의 비밀

최 사장을 만나기 전, 먼저 거대한 배가 만들어지는 현장부터 둘러봤다. 높은 곳에서 거대한 조선소 전경을 바라보면서 묘한 감동이 일었다. 집을 짓는 개미들처럼 여러 파트에서 많은 사람들이 각자 맡은 일을 능숙하면서도 부지런히 해내고 있었다.

최 사장은 조선산업이 여러 제조업 가운데서도 끝까지 중국에 쉽게 밀리지 않을 업종이라고 자신했다. "외부에선 조선업을 노동집약적 산업이라고 부릅니다. 이른바 첨단이 아니란 소리지요. 하지만 고급 관리기술이 총동원되는 산업입니다. 오랜 세월 현장에서 닦은 유기적인 판단력과 팀웍에 나오는 기량은 그렇게 쉽게 따라올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그는 조선산업의 경쟁력을 쇼트트랙에 비유해 설명했다. "특히 여자부문에선 4회 연속으로 계주에서 금메달을 땄다고 하더군요. 순식간에 순위가 결정되는 경기에서 한 두해도 아니고 몇 해를 연속으로 일등한다는 건 뭔가가 있는 겁니다. 생각해보세요. 현대중공업을 비롯해 세계 조선 1위부터 5위업체까지 모두 한국기업입니다. 지구 역사상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일입니다. 일일이 이 자리에서 다 설명하긴 힘들지만, 그 실력은 결코 함부로 넘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 노사화합의 열쇠

현대중공업은 11년째 무분규 노사화합을 이어가고 있다. "진짜 이익이 어떤 것인지 직원들이 잘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또 그런 이익을 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회사에서도 많이 노력했구요.

그는 노사문제에 대해서도 일관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감추고 피하기 보다는 몸으로 부딪혀야 합니다. 직원들이 듣기 싫은 이야기라도 사실이면 해야 하구요. 대화하려면 믿을 수 있어야 하고, 그러자면 솔직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그가 생각하는 리더십에 대해 물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쑥쓰러워했다. 하지만 그의 말은 오히려 더 진솔하게 다가왔다.

"물론 실력도 있어야겠지만, 그전에 팀워크가 좋아야 합니다. 팀워크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나부터 공정하고 성실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나 스스로가 속이지 않으면 다들 저절로 따라오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