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메이드 액세서리 전문점” - '인다' 이은영 사장

나는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성공할 사람이다

서울 이화여대 앞에서 머리핀 장사로 성공한 남자. 트렌드에 민감한 테스트 마켓에서 10년 동안 머리핀을 팔고 있는 남자. 머리핀 하나로 연 매출 10억원을 달성했지만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매장을 지키며 머리핀을 팔고 있는 남자. 핸드메이드 헤어 액세서리 전문점 '인다(INDAH)' 이은영(43세) 사장이다. IMF 때 퇴직의 쓴맛을 봐야 했던 그는 “그동안 좋은 경험을 많이 했다.”며 과거가 있기에 오늘의 그가 있다고 말한다. 과거 경험을 통해 자신의 길을 찾아간 그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그를 만나기 위해 찾은 '인다' 신촌점은 어디에서 한번쯤 봤을 법한 느낌의 작은 액세서리 상점이다. 매장 밖에는 형형색색 곱창 밴드 등 저렴한 가격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상품들이 놓여 있다. 하지만 상점 안으로 들어서니 검은색 내벽으로 이뤄진 인테리어로 인해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고가의 상품도 많다.

귀걸이, 목걸이를 한 것도 아니고 헤어 스타일도 그렇고 어디를 봐도 여성용 액세서리를 팔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이은영 사장은 그저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같다. 여자 이름이고 머리핀을 팔고 있다기에 자연스레 떠올린 이미지는 엉뚱한 상상일 뿐이었다.

“꾸미는 데 별로 관심 없어요. 머리핀 팔 것 같은 모습으로 제 외모를 꾸몄다면 아내가 사업을 못하게 했겠죠.”

'이은영', 여자 이름으로 많이 불려지는 이름 덕에 학창시절 그는 내성적인 남학생으로 성장했다. 놀림도 많이 받아서, 왜 하필 이런 이름을 지어 주셨을까 부모님 원망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간 뒤 학생운동을 하며 마음을 바꿔 먹었다. 운명은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는 국내에서 취업이 어렵자 관광학과 전공을 살리기로 했다. 인도네시아 현지 여행사에서 함께 일해 보자는 제의에 선뜻 바다를 건넜다. 그런데 계획은 도중에 무산됐고 내친김에 여행이나 하자며 계획 없는 인도네시아 배낭 여행을 떠났다. 그러다 해외여행 전면 자유화가 이루어졌고 한국인 여행객 가이드로 현지에서 채용돼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10년 동안 여행사에서 일하며 남부럽지 않을 만큼 돈도 벌고 일에 재미도 느꼈다. 또 그 사이 결혼해 자녀도 얻었다.

그러나 안정된 생활은 거기까지였다. IMF 경제 위기와 함께 그가 관리하던 영업소가 문을 닫게 됐다. 외부에서도 경제 위기가 오래갈 수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쏟아졌다.

“당시 국가 경제가 위태로워 해외여행하는 사람은 매국노 취급받는 분위기였어요. 회사가 어려워 쫓겨난 판국이라 이직은 꿈도 못 꿨죠. 직장 경험으로는 창업할 수도 없었고요. 정말 죽고 싶을 만큼 힘들더라고요. 그동안 내가 딛어 온 땅이 결코 튼튼한 게 아니었다는 걸 그때 실감하게 된 거죠.”

더 이상 전공과 직장 경력에 기댈 수만은 없었다. 다른 업종으로 창업하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준비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일단 일부터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직장 상사의 아내가 운영하는 구두 매장에서 점원으로 일하기로 했다. 구두 제작 과정도 모르고 구두의 중요한 포인트가 어떤 건지도 모른 채 뛰어들었으니 일을 배우기는 더욱 어려웠다. 그의 관심은 자연스레 주변 매장으로 옮겨졌다. 그때 눈에 띈 것이 '머리핀' 매장이었다. 매장은 연일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그래 이거다!' 그는 무릎을 쳤다. 사람이 많으니 장사가 잘 되겠거니 생각한 것이다.

“평소 액세서리에는 관심도 없었지만 여성을 상대하는 사업이라 괜찮을 것 같았다.”고 말하는 그는 창업 ABC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관련 서적을 수도 없이 봤기 때문이다. 여자, 대학생, 상권 등을 꼼꼼히 따진 뒤 이대 앞에서 머리핀 장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늘 행복하고 싶은 바람을 담아 '해피데이'라는 상호로 출발했다. 하지만 10개월 만에 실패로 끝났다. 당시 이대 앞 거리엔 액세서리 상점만도 100여 개. 매장 위치가 길가가 아닌 골목 안쪽에 있었고 어디서나 살 수 있는 물건을 진열해 놓은 것이 사업 실패의 원인이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그 매장을 다시 찾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그가 실패한 사람이 되지 않은 건 바로 포기하지 않고 성취해 내고야 말겠다는 근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걸 해 보자는 마음보다는 지금까지와 정반대로 하면 될 거 같았어요. 평소 이렇게 해서 안 되면 다르게 해 보자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될 때까지 해 보는 거죠.”

그는 타깃층을 보다 확실히 정했다. 직장 여성, 여대생, 미시족 등을 끌어 오기 위해 중고가 정책을 고수하고 이곳에서만 구할 수 있는 핸드메이드 제품을 취급했다. 매장 인테리어도 세련된 검은색을 이용해 분위기 있게 꾸미고 매장 위치도 대로변으로 옮겨 누구든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했다.

하늘이 도운 것일까. 그 뒤 '인다'만의 결정적 성공 포인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재오픈한 지 2개월 만에 SBS 드라마 <토마토>에서 탤런트 김희선이 '인다'의 곱창 밴드를 하고 나왔고, 그것이 뜻하지 않게 선풍적인 바람을 일으킨 것이다. 사실 촬영은 근처 다른 매장에서 진행됐는데, 촬영 중간 쉴 틈을 이용해 배우들이 '인다'에 들렀다가 곱창 밴드를 촬영 소품으로 사용한 것이다. 이후 그는 고마움의 표시로 해마다 영화나 드라마 제작에 머리핀을 아낌없이 협찬한다. 머리핀과 관련된 소품은 모두 그가 제공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는 해피데이의 경험이 큰 도움을 주었다고 말한다. 스스로 “10개월 동안 망하는 과정을 제대로 경험했다.”고 표현할 만큼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경험이 없다. 오픈 뒤 1주일 동안만 속칭 '개업발'이 먹혔고 이후로는 파리 날리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매일 새벽 시장에 나가 고객의 손이 가는 액세서리를 살폈고, 매장 분위기, 고객 응대 등을 몸소 체득했다. 비록 잘 되지는 않았지만 영화관이나 휴대전화 매장 등에 상품을 맡기고 위탁 판매도 해 봤다. 이 모두가 10개월 동안 실패를 경험해 가면서 진행한 것이지만 그것이 오늘날 '인다'의 성공을 위한 든든한 초석이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인다'라는 말은 인도네시아어로 '아름답다'는 뜻이다. 어감도 좋고 뜻도 좋아서 상호명으로 사용했다. 이 역시 과거 경험의 산물이다. 그러고 보면 이은영 사장은 과거를 부인하기보다 과거를 토대로 현재와 미래를 만들어 가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두 번 다시 돌아보고 싶지 않을 만큼 힘들었던 시절이었을 텐데, 오히려 과거를 통해 멋진 삶으로 바꿔 왔으니.

어느덧 머리핀을 판 지 10년이 지났다. 비교적 안정된 생활이지만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어떤 일이 닥칠지 아무도 모른다. 그때와 지금은 또 다르다. 이대와 비슷한 지역 상권이 꽤 많아졌고 온라인 시장은 무섭게 성장해 있다. 그래서 그는 직영점, 인터넷, 중국 진출 등으로 사업을 확장해 가고 있으며, 머리핀의 브랜드화를 위해 끊임없이 채찍질을 가하고 있다.

“가만히 돌아보면 제 의지는 아니었지만 좋은 경험을 많이 한 것 같아요. 시점을 바꾸어 말한다면 현재의 어려움이 앞으로의 삶에 도움이 되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성공할 사람입니다. 최고의 날은 아직 오지 않았거든요. 제겐 '인다'를 최고의 액세서리 브랜드로 만들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새로운 길은 낯설고 실패할 위험도 크지만 두렵지는 않습니다. 꿈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하면 되니까요.”

앞으로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것 하나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과거와 현재의 경험을 통해 미래를 만들어갈 것이라는 사실. 알베르토 까뮈의 “경험은 길을 안내해 주는 램프.”라는 말처럼 그는 지금 미래를 만들어 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