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 땐 창업정신으로 돌아가자.' - 최종건 회장

경기침체 한파가 창업 1세대의 기업가 정신을 되살리고 있다. 사업보국(事業報國) 철학으로 어려운 시기를 극복한 선대 회장을 기리거나 이들의 도전의식을 강조하는 기업이 부쩍 늘었다. 무(無)에서 유(有)를 일궈낸 고인의 업적을 부각시켜 현재 위기를 극복하자는 것으로, 내부결속을 다지는 효과도 기대된다.

SK는 15일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에서 창업주인 고(故) 최종건 회장 35주기 추모식을 열었다. 총수 일가와 SK 1세대 임원 등 700여명이 참석했다. 이번 추모식에선 특히 고인의 위기 극복 의지를 되새기자는 분위기가 뚜렷했다. 고인의 아들인 최신원 SKC 회장은 가족대표 인사말에서 "그룹에 위기가 닥쳤을 때 선친이라면 어떻게 극복했을까 고민한다"며 "선친의 열정과 뜻을 이어받아 재창업의 각오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조카 최태원 SK 회장은 "인간 위주의 경영, 패기의 정신 등 SK를 SK답게 하는 소중한 가치와 전통이 고인의 경영활동에서 비롯됐다"며 "SK 경영의 근본을 소중하 계승 발전시키겠다"고 했다.

현대그룹은 지난 10일 러시아 투자회사와 전략적 제휴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면서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유지를 받들어 북방사업에 재도전한다"고 공식 천명했다. 현대그룹은 올들어 '뿌리찾기'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지난 2월 서울 계동 사옥에 '현대'라는 머릿돌을 5년 만에 복원시켰고, 그룹의 모태인 현대건설 인수도 선언했다. 취임 5주년을 맞은 현정은 회장이 제2기 경영 돌입을 앞둔데다 현대상선, 현대아산 등 계열사들이 시장 악화와 금강산 관광 중단 등으로 고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신적 구심점이 더욱 절실했기 때문이다. 현 회장도 고 정 명예회장의 경영철학인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말을 자주 언급하며 임직원에게 정신 무장을 주문한다. 현대중공업 역시 고 정 명예회장의 생전 모습을 담은 광고를 제작하는 등 꾸준히 창업주의 존재감을 대내외에 전하고 있다.

한라그룹은 지난달 1일 그룹 창립 46주년을 기념해 창업자인 고 정인영 명예회장의 흉상을 경기도 만도 평택공장과 기흥연구소에 설치했다. 그룹 통합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명예회장의 사이버 추모관도 만들었다. 한라그룹은 지난 3월 만도를 9년여 만에 되찾은 뒤 그룹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최근 기업가들의 강연에서도 창업주 정신이 강조된다. 윤종용 삼성전자 고문은 지난 7일 대한상공회의소 주최 간담회에서 "기업 최고경영자들은 변화를 주도하는 리더십과 직관력을 갖춰야 한다"며 "삼성 이병철 회장, 현대 정주영 회장은 데이터는 5%만 활용하고 95%의 직관력으로 경영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지난 3일 '기업가정신 국제 콘퍼런스'에서 "창업세대 기업인들의 사명의식과 도전정신을 본받아 기생을 거부하고 스스로 길을 개척해야 한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