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의 가능성을 100%의 성공으로 -와라와라」

아직도 눈을 감으면, 3년 전 그 날이 떠오른다. 찬바람 사이로 간간이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던, 뭔가 해냈다는 마음에 온 몸이 들떴던 그때가 말이다. 2004년 3월 5일, 나는 아들과 함께 육 개월 간 온 몸을 바쳐 준비한 가게를 열었다. 대학가라는 A급 상권에 깨끗한 새 건물을 임대해, 아들과 내가 직접 디자인하고 만든 일식 퓨전 음식점 「와라와라」. 이혼의 아픔을 딛고 일어서게 해 준 그 가게는, 나만의 힘이 아니라 가족과 소상공인 지원센터의 지원이 있어서 가능한 것 이었다.

오랜 결혼생활을 정리한 후, 나는 세상에 혼자 떨어진 기분이었다. 허전하고 불안했다. 더 늦기 전에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지만 마음이 지친 상태여서 몸이 쉽게 움직여지지 않았다. 위자료를 받았지만 무엇을 시작하기에는 조금 부족했다. 깊은 고민 끝에 경험을 살려 음식점을 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새로운 기술을 배운다거나 해보지 않은 다른 일을 시도하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 하지만 나는 이번에야 말로 용기를 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생인 아들을 설득해 함께 가게를 열기로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심스럽게 건넨 제안을, 아들은 기쁘게 받아들여주었다. 인건비 절약이라는 좋은 점도 물론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장성한 자식과 함께 시작한다는 것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한창 놀아도 부족한 나이에 엄마를 위해 당당하게 휴학계를 내고 돌아오는 아들의 모습에 몰래 눈물을 훔쳐내기도 했다.

예산을 세워보니 보증금이며 인테리어 비용, 주방도구 등의 세세한 부분까지 대략 일억 오천이라는 돈이 필요했다. 가지고 있던 팔천만원으로는 어림도 없는 금액이었다. 은행을 찾아가 대출이나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하려고 했지만 담보가 없었다. 신용이 깨끗하더라도 보증이나 담보가 없는 사람에게 은행의 문턱은 높기만 했다. 이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가 하는 마음이 들어 조급해졌지만, 조금 더 알아보기로 했다. 내 인생에 어떤 전환점이 될 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2004년 3월 개업을 목표로 삼고 과감하게 사채를 끌어다 쓰기로 했다. 이자라던가 상환기간 등에 대한 압박이 만만치 않았지만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모든 것을 던지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위자료로 받은 팔천만원과 가까운 친척에게 빌린 이천만원, 그리고 사채로 마련한 오천만원으로 본격적인 개업 준비에 들어갈 수 있었다.

신문이나 TV, 라디오를 꼼꼼히 살펴보고 서점을 돌면서 여러 가지 책을 뒤져 보았다. 기왕 시작하는 것, 색다르고 확실한 무엇을 하고 싶었다. 인테리어 비용을 아끼기 위해 아들이 직접 전문서적을 뒤져 실내 디자인을 했다. 신촌 등 유명대학 근처에서 매출이 특히 높은 일식집을 다니며 음식과 실내장식 등을 참고해 젊은 층에 초점을 맞추었다. 일식 조리학원 선생님께 특별히 부탁해 열 가지에서 스무 가지 정도의 조리법을 배우기도 했다.

모든 일이 순조로운 듯 했지만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사채였다. 모든 사채이자가 그렇듯 눈덩이 불어나는 것처럼 무서운 속도로 이자가 불어나고 있었다. 빨리 갚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바쁘게 움직여도 부족한 시간에 사채에 대한 강박관념은 무서운 스트레스로 작용했다. 뭔가 해결 방안이 필요했다. 대출이 아니라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절박한 느낌이었다. 여성창업을 위한 대출제도가 있다는 정보를 얻어 문의를 해 보았지만 제출 서류가 너무 복잡하고 자격 조건도 무척이나 까다로웠다. 춥고 긴 겨울이었다.

얼마 후, 정말 우연히 소상공인 대출제도를 알게 되었다. 어둠 속에서 한줄기 빛을 찾은 느낌이었다. 자격 조건을 살펴보니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확신이 들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사무실을 찾아갔다. 사무실은 친절한 안내가 인상적인 곳이었다. 처음 오는 사람이라도 주눅 들지 않고 편안하게 궁금한 것들을 알아 볼 수 있었고,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는 데에도 직원들이 꼼꼼하고 친절하게 도와줘서 기분 좋게 접수 할 수 있었다. 예감이 좋았다. 물론 지원이 확정 되려면 한 달 정도를 더 기다려야 하며, 심사까지 거쳐야 했다. 꼭 나온다는 보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 말고도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오천만원을 신청했다. 사무실을 나서면서 뭔가 마음이 든든해진 느낌을 받았다. 몸에서 다시 힘이 솟는 느낌이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이나 자금 지원 같은 것은 많이 보아 왔지만 우리 같은 서민을 위해, 소상공인을 위해 지원을 해 주는 제도가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도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었다. 큰 기업은 어떨지 몰라도 우리 같은 서민은 단돈 일천만원 이천만원에 운명이 좌우되기 십상이기 때문에 오천만원이라는 큰 돈을 보증이나 담보 없이 지원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남은 것은 검사관이 나와 심사를 할 때까지 가게 오픈 준비를 완벽하게 하는 것뿐이었다.

개업 준비에 더욱 몰두했다. 일식에 대한 온갖 정보들을 닥치는 대로 수집해 읽고 연구하고, 젊은 세대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대학로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A급 상권이라고 해서 반드시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40평인 우리 가게보다 훨씬 크고 세련된 가게는 얼마든지 있는 곳이었다. 확실한 아이템과 톡톡 튀는 차별화를 가져야 했다. 그 때문에 아들은 당시, 소위 잘 나가던 일식집에 아르바이트를 해 가면서 경영 노하우를 배워오기도 했다. 나 역시 요리학원을 다니고 세부적인 가게의 모습을 구상하며 바쁜 시간을 보냈다. 실내장식이 완성되고 주방기기를 들이고 메뉴판을 만드는 등의 모든 채비를 갖추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3월이 찾아왔다. 우리는 설레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한 마음으로 육 개월 동안 온갖 열정을 쏟아 부었던 가게를 처음으로 손님들에게 선보였다. 처음 매출은 그저 보통 수준이었다. 사채에 대한 불안감이 문제였겠지만, 심사를 하기로 한 날짜는 너무 느리게만 다가오는 것 같았다. 혹시 아주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괜한 불안감에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거의 한 달이 되어가던 날, 현장검사가 드디어 가게를 찾아왔다. 이미 50%는 합격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자신 있었다. 이 가게를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땀을 흘렸던가. 심사는 공정했다. 일체의 로비가 허용되지 않았다. 가게 자체만을 보고 서류를 채워나갔고, 최종적으로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합격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직 알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분명히 운명은 내 편을 들어줄 것이라는 자신이 있었다. 그만큼 내가 가게에 쏟은 정성은 컸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기다리던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를 타고 넘어오는, 심사에 합격했다는 말이 믿기지 않았다. 농협으로 가서 통장을 만들면 그 통장으로 입금이 될 것이라고 했다. 복권에라도 당첨된 느낌이었다. 오십 평생을 살면서 주눅 들고 자신감 없이 살아온 내가 영리하고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통장을 만들고 얼마 후 삼천오백만원이 입금되었다. 이걸로 사채를 거의 청산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절로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떨리는 마음으로 길을 나서는데 부드러운 햇살이 온 몸을 휘감아 따뜻했다. 본격적인 봄이 온 것이었다. 마치 나의 미래를 비추는 햇살 같았다.

매출은 서서히 상승곡선을 그렸다. 3개월에 한 번씩 거의 두, 세배씩 증가했다. 단골손님이 늘어나는 만큼 직원을 점점 늘려야 했고 영업시간도 그만큼 길어졌다. 모든 시간과 생활을 다 가게에 쏟아 부었다. 평생 이만큼 커다란 활력을 갖고 살았던 적이 거의 처음이라고 느낄 만큼, 모든 열정을 쏟아 부었다. 소규모였지만 사업은 분명히 사업이었다. 항상 오픈 두 시간 전부터 마음속으로 오늘 하루를 계획하고 구상했다. 긴장하지 않으면 항상 일정하던 요리의 맛도 떨어지고 서비스의 질도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잠자는 시간을 빼고 모든 시간을 가게에서 보내며, 나는 내 마음 속에서 승리의 여신이 미소 짓고 있음을 느꼈다.

개업 후 2년 만에, 나는 모든 빚을 청산하고 일정한 수익을 유지하게 되었다. 아들은 더 이상 휴학을 할 수 없어 복학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가게의 절반을 아들이 책임지고 있었다. 물론 직원을 더 채용할 수도 있었지만, 내 가게처럼 해주는 내 사람을 구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우리는 또 한 번 중대한 결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몇 군데 알아본 끝에, 우리는 믿을 만 한 사람에게 가게를 넘기기로 결정했다. 좋은 가격으로 협상을 했고, 2년 4개월 만에 우리 모자는 가게를 나왔다. 참으로 기분 좋은 마무리였다.

어디에도 빠져나갈 길 없는 절망의 늪에서, 소상공인 지원센터의 지원은 든든한 동아줄 같은 것이었다. 그 동아줄을 잡고 나온 나는 현실에 맞설 용기를 얻었고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결단력을 가질 수 있었다.

어떤 일이라도 그렇겠지만 의외로 자금 문제로 시달리다 빛을 보지 못하고 무너지는 사업자들이 많다. 특히 우리 같은 소규모 창업자들은 담보나 보증이 없어 사채라는 위험부담을 끌어안거나, 자금난으로 제대로 된 창업을 못해 망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런 점에서 소상공인 지원정책은 반드시 필요한 정책이다. 작은 경제가 원활히 돌아가야 큰 경제도 제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는가. 물론 그런 지원은 지금처럼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앞으로의 서민경제의 전망은 분명히 밝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가게를 넘기고 나서 나는, 지금 전국일주를 계획하고 있다. 이 여행이 성공리에 끝난다면 나는 아마 또 다른 도전을 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내 나이가 결코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이만큼의 지혜가 내 속에 있고, 이번의 성공으로 온 몸 가득 열정이 있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기회가 온다.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행운일 것이다. 1%의 가능성만 있어도 붙잡고 늘어져라. 열정으로 움직여라. 인간에게는 누구나 그런 힘이 숨어 있다. 두려워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자. 분명히 영광스러운 결과가 손에 단단히 쥐어져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