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이 모든 것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고객들의 발길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유명한 맛집치고 인테리어가 잘된 집을 찾기란 참 드문 일이다. 이들 맛집들은 오직 맛으로 소문난 집들이기 때문에 시설이나 친절 서비스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무리인지도 모른다.그런데 이런 유명 맛집의 사례를 보면서 초보창업자 입장에서 맛만 있으면 음식점으로 대박을 터뜨리지 않을까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유명 맛집들치고 1~2년 만에 맛집으로 자리매김한 곳은 거의 없다. 맛집으로 토대를 잡기까지는 최소한 30~40년 이상의 기나긴 세월동안 고객들로부터 검증 받으면서 자리매김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몇 년 전에 일산 주엽역 먹자골목에서 돈가스집을 오픈했는데 장사가 안 된다며 필자에게 컨설팅을 의뢰해온 점주가 있었다. 그곳은 1층 25평 매장을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250만원, 그리고 권리금 3,000만원에 인수한 매장이었다.

고정투자비용만 총 8,000만원이 투자된 것이다. 장사가 안 되던 해장국집을 그대로 인수했기 때문에 시설은 그대로 활용하면서 돈가스집으로 간판과 천갈이만 해서 가게를 열었다.주인 R씨는 맛 하나만큼은 자신 있다고 했다. 그도 그럴것이 삼청동의 유명 돈가스집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주방장에게 직접 조리법을 전수받았기 때문이다. 시식을 해보니 맛 자체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곧바로 매출부진의 원인규명에 들어갔다. 해당 매장을 중심으로 수요와 공급 측면에서의 시장조사에 착수했다. 주변에는 당시 IMF의 반등세로 나타났던 일식 돈가스 매장이 4군데나 자리잡고 있었다.R씨의 매장에 비하면 외부에서 보이는 분위기부터 달라 보이는 매장들이었다.

더욱이 일산 주엽역 자체가 호수공원으로 이어지는 먹자골목상권이기 때문에 공급과잉이라고 할 만큼 다양한 음식점이 분포되어 있는 상권이었다. 고객들 입장에서는 선택의 폭이 넓기 때문에 중하급지에 위치한 R씨의 돈가스집은 선택의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박에 없었다.다음으로 내부적인 경쟁력 조사에 착수했다. 맛은 나무랄 데가 없었지만, 문제는 인테리어와 익스테리어였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돈가스집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분위기가 있다. 최소한 해장국집에서 선지해장국 한 그릇 해치우는 분위기와는 달라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R씨의 매장은 해장국집을 했던 인테리어에다 도배만 다시 하고 문을 열었다.

외부 익스테리어 또한 가관이었다. 청색바탕에 흰색 간판글씨체로 ‘OOO돈가스’라고 새겨진 파나플렉스(간판에 씌우는 천의 일종) 간판은 고객들의 시선을 끌기엔 역부족이었다.창업과정을 들어보니 상황이 왜 그런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창업자금 1억원으로 가게 문을 열어야 했는데, 점포구입비용에 8,000만원을 투자하다 보니 시설투자에는 신경을 쓸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맛은 있었기 때문에 한번 먹어본 고객들의 반복구매가 이어진다면 장사가 잘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만약 오직 맛으로 승부를 걸 생각이었다면 삼청동의 돈가스집 골목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영업을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서 기사식당 입지를 잡아서 영업을 하는 편이 현명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이런 경우라면 시설은 신경 쓰지 않고, 오직 맛과 주차편의성만 갖추면 되기 때문이다.하지만 일산상권에서 돈가스집을 운영하려면 최소한의 분위기는 내야 한다. 더욱이 돈가스라는 메뉴 자체가 한국인들에게는 매일 먹는 음식이 아니다.

아이들 앞세우고 밖에 나가서 외식하는 대표메뉴 중 하나다.그렇다면 실내분위기는 물론 외부 간판이나 익스테리어에서 일식 돈가스집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벤치마킹 했더라면 고객들의 시선을 끌 수 있었을 것이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싸게 인테리어를 하려다 크게 낭패를 본 사례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