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의 눈물’ 을 닦아줄 지도자

한 때 사극 ‘용의 눈물’이 장안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탤런트 유동근이 주인공 태종 이방원역을 맡은 이 드라마는 장년층의 큰 인기를 끌었다.

용은 임금을 상징하는 상상의 동물이다. 용상은 임금이 정무를 보던 평상을 말하니 용상에 오르다란 말은 임금으로 즉위했다는 것을 뜻한다. 드라마 제목인 ‘용의 눈물’은 그러니까 임금의 눈물을 말한다. 임금도 사람일진대 슬플 때 눈물을 흘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임금의 눈물은 일반 백성의 눈물과는 격이 다른 듯 그 눈물을 용의 눈물에 비유했다. 엄밀히 따지면 상상의 동물인 용이 눈물을 흘릴 일은 없다.

각설하고 이 드라마의 줄거리를 보면 우리가 역사시간에 배워온 사실들과 대동소이하다.

이방원은 이성계와 첫 번째 부인사이의 다섯 번째 아들이다. 아버지 이성계를 도와 조선이란 새로운 왕조 창업의 일등공신이지만 세자로 낙점 받지 못하자 태조 이성계가 쇠약한 틈을 타 왕자의 난을 일으킨다. 요즘말로 하면 사실상 쿠데타다.

자신을 견제하던 개국공신 정도전을 살해한 그 길로 궁궐로 달려가 세자인 이복형제 방석과 그의 형 방번을 무참하게 죽인다. 그 뒤 자신이 바로 용상에 앉기에 부끄러웠는지 만만한 둘째형으로 하여금 임금 자리를 잠시 지키게 한다.

자식이 없던 정종은 동생 태종의 눈치만 보며 가시방석 같은 왕의 자리에 있다 물러날 때를 알아 스스로 왕위에서 내려온다. 그렇게 처신하지 않았다면 정종도 천수를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태종 이방원은 그때서야 자신이 그토록 탐했던 조선 3대 왕으로 즉위 한다.

아들의 만행에 화가 난 태조 이성계는 자신이 건설한 도읍지인 한양을 떠나 고향인 함흥으로 떠난다. 아버지의 마음을 돌려 한양으로 돌아오게 하려고 태종은 무수히 많은 사신을 보낸다.

함흥으로 간 태종의 심부름꾼 중 돌아온 사람은 별로 없다. 모두 함흥차사가 되고 말았다.

태조가 우여곡절 끝 한양으로 돌아와 지내다 결국 눈을 감는다. 그 역시 조선 개국과정 자신의 칼에 수많은 피를 묻힌 경험이 있는 만큼 아들의 만행에 끝 까지 분노 할 수만 없었을 것이다.

태조가 죽고도 태종의 숙청은 계속된다. 자신의 즉위에 견마지로를 다했던 처남들 넷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척결한다. 그는 세종에게 선위하고 상왕이 된 뒤에도 명나라로 사신으로 떠났던 세종의 장인 심온이 돌아오자 사사한다.

그가 명나라로 떠날 때 연도에 많은 사람들이 배웅 나온 것이 눈에 거슬렸던 모양이다. 권력의 화신인 그의 눈에는 “이것들이 감히 내가 살아있는데 아들의 장인에게 줄을 대려고….”라고 분노했을 것 같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자신과 사돈 간인 죄 없는 신하의 목숨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처단하다니 소름이 돋는다.유배를 보내고 끝내도 될 일을 말이다. 태종과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세자교체다.

세자인 양녕대군이 공부는 팽개치고 주지육림에 빠져 남의 아녀자를 빼앗아 자신의 첩으로 데리고 사는가 하면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니 결국 폐위되고 만다.

양녕대군의 폐세자를 두고 일부는 동생인 충녕대군(세종)의 됨됨이가 자신보다 낫다고 생각해 그렇게 했다고 그럴듯한 해석을 한다. 그러나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찬탈할 때 종친의 원로로 세조를 꾸짖기보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돕고 나선 것을 보면 양녕대군에 대한 그런 평가는 부당해 보인다. 오히려 왕위를 동생에게 빼앗긴 설움을 동생의 손자에게 앙갚음하는 모양새다. 태종은 무수히 많은 사람을 처단하고 18년간 절대군주로 군림한 뒤 54세로 승하했다.

그에 대해 역사교과서는 조선 왕조 초기 왕권을 튼튼히 해 아들 세종이 치세(治世)의 길을 열도록 스스로 악역을 한 고뇌에 찬 군주로 묘사한다.

이런 태종의 삶이 드라마의 소재로도 더 없이 좋은지 최근 또 한편의 태종 이방원 드라마가 시작됐다. 그와 더불어 태종의 강력한 리더십을 배워야한다는 주장도 눈에 띈다.

때마침 대선의 계절이다. 지금 국민에게 절실한 것은 ‘용의 눈물’보다 ‘백성의 눈물’을 닦아줄 지도자다.

그런 지도자가 지금의 대선 후보 중 과연 있을까. 3.9일 선거에서 우린 그런 후보를 찾아 투표해야 한다. 온갖 현란한 공약이 난무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