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기부로 장난 안친다는 김범수 창업자 돕는다"

김정호 브라이언임팩트 재단 신임 이사장…"과학 기술로 사회공헌 할 것"

발달장애인 고용 베어베터 매출 150억원 눈앞…"일상이 행복"

"김범수 창업자에 '기부'로 장난치지 않겠다는 약속과 당신 돈을 쓰지 않겠다는 것을 조건으로 걸었습니다. 아직은 '기린이(기부+어린이)'이지만 빨리 성장할 수 있게 도와드리겠다고 했죠(웃음)."

김정호 베어베터 대표가 재산의 절반을 내놓겠다고 밝힌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설립한 브라이언임팩트 재단의 이사장을 맡으면서 내건 조건은 딱 두 가지다. 첫번째는 브라이언임팩트 재단을 우회적으로 증여나 상속을 하는 도구로 사용해선 안된다는 것과 본인이 이사장직을 수락한 이후 재단의 돈을 쓰지 않겠다는 것.

김범수 창업자를 이제 막 기부에 발을 뗀 '기린이'라고 부른다는 김정호 대표. 그는 김범수 창업자의 '기부 진심'을 확인하고 김 창업자가 과학 기술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기꺼이 '조력자' 역할을 자처했다.

◇"기부로 닿은 30년 인연…두 가지만 약속해 달라"

김정호 대표와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의 인연은 당시 삼성SDS 인사팀에서 근무하던 김 대표가 회사에서 근무할 '병역특례(전문연구요원)' 대상자로 김범수 창업자를 선정한 3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러간다.

이후 김범수 창업주는 1998년 한게임을, 김정호 대표는 1999년 이해진 전 네이버 이사회 의장과 네이버를 창업하면서 다른 길을 가는 듯 했으나 한게임과 네이버 합병에 역할을 하며 연을 이어왔다.

국내 대표 '벤처 1세대'인 김정호 대표는 2009년 네이버를 떠나지만, 카카오 초기 투자자로 참여했다. 김정호 대표는 김범수 창업자가 '브라이언임팩트' 재단을 설립했을 때부터 이사회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김 의장의 뜻에 공감했다.

김 대표는 "처음 (김범수 창업자가) 기부를 한다고 했을 때 분위기가 좋지 않으니 무언가를 하려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었다"며 처음부터 '진정성'을 믿었던 것은 아니라고 운을 뗐다.

김정호 대표는 이같은 이유를 들어 김범수 창업자에게 '두 가지'의 조건을 제시했다. 김 대표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재단을 통해 우회적으로 증여를 하거나 상속을 하는 것과 같은 '장난 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며 "만약 조금이라도 그런 형태로 운영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으면 안하겠다고 한 것이 첫번째 조건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하나는 재단 일을 하면서 절대로 급여를 받거나 법인 카드를 쓰거나 운영비를 쓰지 않겠다고 했다"며 "재단의 돈이 '내 돈'도 아니거니와, 10여년간 나름대로 사회공헌 활동을 한다고 했던 사람인데 내가 월급을 받으면서까지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정호 대표는 "나도 사실 돈이 없지 않다. 김범수 창업자나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130억정도는 기부했다"며 "그동안 내가 살아왔던 인생에 오점을 남기기 싫었다"고 말했다. 그가 브라이언임팩트 재단 이사장직을 수락한 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범수 창업자 보다 돈이 없지 가오가 없지는 않다"고 언급한 배경이다.

이런 김정호 대표에 김범수 창업자가 부탁한 것은 딱 하나다. 브라이언임팩트 재단이 '과학기술을 통한 사회공헌'을 할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해 달라는 것이었다. 김 대표는 "(김범수 창업자는) 나이가 들어 본인이 직접 빌게이츠 재단처럼 사회공헌을 하고 싶은데, 그 전에 재단의 조직이나 경험, 시스템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나의 임무는 기부할 만한 곳을 발굴해 '(기금을) 지르는 것'이 아니다"며 "김범수 창업자가 확신을 갖고 선택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고, 언제든지 김 창업주가 '내가 할게' 한다면 원래 하던 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브라이언임팩트재단은 우선 8월과 12월 기부 대상을 선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또한 기술적으로 사회공헌을 할 수 있는 방안을 기획해 내년 중 오픈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딸과 함께 한 여행서 영감 얻은 사회적기업…현명하게 살았노라고"

김정호 대표의 삶도 '기부'로 성숙해졌다. 네이버를 떠나 수백억원의 돈을 쥔 김정호 대표가 사회적기업인 베어베터를 설립하게 된 것은 딸과 함께 한 아프리카 여행이 계기가 됐다.

김 대표는 "딸이 중학생이던 시절 케냐로 여행을 갔는데, 우연히 미혼모 대상의 사회적 기업인 '카주리'를 접했다"며 "착한 소비의 아주 표준적인 모델로 약 300명정도가 먹고 살 수 있게 된 것을 보면서 '사업이라는 것이 이렇게 할 수도 있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다소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카주리는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재능 기부를 통해 만든 악세서리를 헤롯백화점과 같은 세계적인 백화점에 파는 구조다.

한국에 돌아온 김 대표는 발달장애인을 고용하는 '베어베터'를 창업하기에 이른다. 그동안 장학금이나 기금 출연 등을 통해 기부를 실천했던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사회적 기업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베어베터는 발달장애인을 고용해 쿠키, 명함 등을 납품하면 기업은 거래금액의 절반까지 과태료를 탕감받을 수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일례로 베어베터가 납품하는 명함 1통의 가격은 시중 업체의 2배 수준인 1만4000원이지만 '장애인표준사업장'인 베어베터를 통해 연계 고용을 하면 과태료를 탕감받을 수 있어 기존 업체와 같은 가격에 명함을 구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카카오나 네이버 내 사내 꽃집에서는 베어베터 직원이 일하기도 한다.

2012년 설립된 베어베터는 지난해 직원수 300여명, 매출액 100억원을 돌파했다. 베어베터와 계약한 기업 수만해도 500개를 넘어섰다. 올해에는 매출액 150억원 달성이 유력하다.

김 대표는 "설립 초기 한 3년간은 힘들었지만 이후 8년간은 지속적으로 흑자를 냈다"며 "이제 정기적으로 주문을 하는 기업들만해도 500개가 넘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회사가 흑자를 내더라도 영업이익을 전부 직원들에게 배분한다.

마지막으로 성공한 사업가·사회적 기업가·파이어족 등 수식어가 붙는 김정호 대표에게 '어떤 평가를 받고 싶느냐'고 물었다.

"가장 현명하게 살았다는 말을 듣고싶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주말에 '등산' 정도는 할 수 있는 지금의 일상들이 가장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