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국내 민간소비가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보통 민간소비는 경제성장률과 유사한 증가세를 나타낸다.
생산 확대에 따르는 소득 증가만큼 소비도 증가한다.
국내 민간소비 증가율은 90년대만 해도 평균 7%대를 기록하는 등 높은 경제성장을 뒷받침하는 버팀목이 됐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민간소비 증가율은 평균 3%대로 급락해 5% 내외의 경제성장률을 크게 밑돈다.

민간소비 부진은 투자 수요를 위축시켜 내수 경기 침체를 심화시키고, 결국 성장 둔화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민간소비 증가율이 경제성장률보다 낮아진 배경은 무엇일까.
우선 고용 없는 성장을 들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경제의 고용 창출 능력은 지속적으로 약화돼 과거 30만~40만명대에 이르던 취업자 증가 수가 최근에는 10만명대로 축소됐다.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과 금융기관, 그리고 공기업 등의 구조조정으로 이들 부문의 많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기술집약적인 정보통신(IT) 산업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전 산업의 고용 흡수 능력도 약화됐기 때문이다.

또한 수출과 내수 경기의 단절로 수출 호조에도 내수 경기는 침체되는 현상이 심화된 점도 고용 부진의 원인이다.
이처럼 고용 없는 성장이 계속되다 보니 평균 성장률은 높아도 전체 가계의 고용 확대에 의한 소비 증가는 부진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가계부채 급증이다.
국내 가계부채는 2008년 2분기 현재 660조4724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98년 183조6481억원에 비해 3배가 훨씬 넘는다.
가계부채 급증으로 경상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98년에는 37.9%였으나 2007년에는 70%로 늘었다. 그 결과 2007년 현재 가처분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한국이 148.1%로 미국의 141.3%보다 높다.
최근 들어서는 시중금리와 대출금리가 오름세여서 대출상환부담률도 계속 상승하는 추세다. 설상가상으로 외환위기 이후 조세부담률과 국민부담률도 계속 증가했다. 조세부담률은 총 조세 징수액을 명목 GDP로 나눈 것이다.
이는 98년에 17.5%였으나 2007년에는 22.7%로 상승했다. 국민부담률은 조세에다 사회보장기여금을 합한 금액을 명목 GDP로 나눠 산출한다. 사회보장기여금에는 국민연금·건강보험·산재보험·고용보험 등이 모두 포함된다.
이 역시 21%에서 28.7%로 올랐다. 고용 부진으로 소득 여건은 악화되는데 가계부채와 세 부담마저 크게 늘었으니 소비 여력이 급격히 줄어든 것은 당연한 결과다.
소득 불균형이 심화돼 소비 탄성치가 높은 저소득층의 소비 능력이 약화된 것도 소비 부진의 주요 원인이다.
상위 20% 계층(5분위)에 대한 하위 20% 계층(1분위)의 소득 배율인 소득5분위배율이 크게 높아진 것.
외환위기 전인 1990~97년까지 5분위 소득 배율은 3.8배 정도였으나 1998~2007년 사이에는 4.7배 수준으로 상승해 계층 간 소득 불균형이 더욱 심화됐음을 알려준다.
한편 국내 가계들의 최종 소비 지출 중 국외 소비가 많은 점도 국내 소비를 낮추는 요인이다. 98년 국외 소비액은 2조8000억원으로 국내 소비 지출의 1.1%에 불과했으나 2007년에는 17조7000억원으로 무려 4.8%로 증가했다.

그동안 원화 환율의 절상에 따라 국외 구매력이 늘어나 국외여행이 붐을 이루고 국내 가계 자녀들의 국외 유학도 급증했기 때문이다.
국내 소비 지출 내역 중 교육비 부담이 큰 점도 소비 심리와 체감 소비를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국내 소비 지출에서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5%에 달한다.
그러나 사교육비가 가계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대로 추산된다.
문제의 심각성은 소득이 낮은 서민일수록 사교육비가 전체 소득이나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힘들게 번 소득을 자녀 교육을 위해 거의 다 쏟아 붓고 있는 격이다.
요즘처럼 하루 앞을 내다보기도 힘든 미래의 불확실성도 가계소비 심리를 악화시켜 소비 지출을 줄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소비 증가 역시 고용 확대에서부터 풀어나갈 숙제다.